2000년대 초반만 해도 스타벅스는 이른바 '된장녀' 논란을 부를 만큼 사치재로 통했다. 1999년 스타벅스가 서울 이화여대 앞에 처음 문을 열자 밥 한 끼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는 대학생들을 비난하는 문화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당시 스타벅스 커피 한잔 가격은 3000원(아메리카노 톨 사이즈)으로, 2000원대 수준이던 자장면 한 그릇 값보다 비쌌다. 웬만한 대학 구내식당의 밥값보다도 비쌌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 자장면 한 그릇 가격은 평균 7308원(지난달 서울지역 기준·한국소비자원 조사)까지 뛰었지만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한 잔 값은 4500원에 불과하다. 자장면 가격이 3배 가까이 오르는 동안 스타벅스 커피값은 그 절반에도 못미쳤다.
덕분에 최근 소비자들 사이에선 “물가가 워낙 올라 스타벅스 커피는 오히려 저렴하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25년간 스타벅스 커피 값은 왜 크게 오르지 않았을까.
15일 스타벅스코리아에 따르면 스타벅스가 1999년 국내에 진출한 뒤 현재까지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 가격은 3000원에서 4500원으로 50% 상승했다. 연평균 상승률로 따지면 1.64% 수준. 최근의 2~5%대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스타벅스 커피 값 상승률은 많이 안 올랐단 얘기다.
주요 외식 메뉴 가격 상승률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 크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서울 기준으로 지난 6월 김밥 한 줄 가격은 3462원으로, 1년 전(3200원)과 비교하면 8.1% 올랐다. 자장면 한 그릇 가격도 7308원으로 1년 전(6915원)과 비교하면 5.6% 상승했다. 냉면(1만1923원)과 칼국수(9231원)도 1년 전과 비교하면 각각 6.8%, 3.8%씩 뛰었다.
최저임금 대비 커피 가격을 계산해볼 수도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1999년 시간당 최저임금은 1525원으로, 당시 1시간58분 가량 일을 해야 스타벅스 커피 한잔을 마실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 최저임금(9860원)으로 따져보면 지금은 27분 정도만 일해도 커피를 사먹을 수 있다. 과거에 비해 스타벅스 커피는 상대적인 관점에서 판단하면 매우 저렴해진 셈이다.
소비자 반응만 봐도 스타벅스 커피 값이 비교적 덜 올랐다는 점을 체감할 수 있다. 앞서 스타벅스코리아는 이날부터 닷새 동안 베스트 음료 3종을 25년 전인 최초 출시 가격으로 제공하는 '커피 아워 25' 이벤트를 전개한다고 밝혔는데 이후 온라인서 화제로 떠올랐다. 스타벅스코리아에 따르면 이번 행사에서 톨 사이즈를 기준으로 1999년 가격인 아메리카노 3000원·카페 라떼 3500원·카라멜 마끼아또 4000원에 각각 판매한다.
행사 소식을 접한 누리꾼은 다양한 의견을 내놨다. 이들은 행사 가격과 관련해 "이땐 진짜 밥보다 비쌌구나", "저 시절 스벅보다 지금 저가 프랜차이즈가 더 저렴하네", "1999년에도 우리나라에 스벅(스타벅스)이 있었구나", "물가가 오른 것에 비하면 커피값은 되려 저렴해진 편"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스타벅스 커피 값이 다른 외식 메뉴에 비해 눌려 있는 까닭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내 커피 시장이 완전경쟁시장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점차 소비자의 커피 취향이 고급스러워지고 시장도 성숙해지면서 글로벌 브랜드 진입이 활발해지고 있어서다. 25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 커피 시장은 원두커피라는 말조차 생소할 정도로 카페 문화 자체가 낯선 것이었다. 이에 따라 일부 고급 커피 브랜드가 독점적 지위를 형성한 만큼 스타벅스 커피의 가격 민감도도 낮았다.
하지만 최근엔 대체재가 크게 늘어난 만큼 커피에 대한 소비자들의 가격 민감도가 높아졌다. 특히 저가 커피 브랜드가 늘어난 이후부턴 커피가 ‘저렴하게 마실 수 있는 상품’이라는 인식이 강해져 소비자들이 더욱 가격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스타벅스 아메리카노의 연평균 가격 상승률이 일반적인 물가 상승률과 비교하면 크게 오른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가격을 비교할 때 전년 대비 얼마나 올랐나도 중요하지만 다른 커피 브랜드와의 가격 차이를 따져보는 게 우선시 된다”고 설명했다.
한 프랜차이즈 카페업계 관계자도 “최근엔 스타벅스 커피 값이 일정 정도로 오르면 가격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은 메가커피나 컴포즈 등 저가 카페로, 맛을 중시하는 이들은 블루보틀로 이동하는 등 대체제가 즐비하다”며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가격 민감도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를 치밀히 계산하면서 가격 인상에 보수적으로 굴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커피 소비가 늘긴 했지만 여전히 다른 외식 메뉴에 비해 필수재로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 시장에서 스타벅스가 가격을 인상한 후 매출이 급감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시장조사 업체 레비뉴매니지먼트솔루션의 조사 결과 스타벅스는 지난 1분기 미국 전체 매장 방문객 수가 7% 급감했다고 밝혔다. 동일 매장의 매출은 전년 대비 4% 쪼그라들었다. 이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이다.
이같은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 가격 인상이 꼽힌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스타벅스 메뉴 가격은 주마다 다르게 책정되는데 고물가와 임금 인상 여파로 아메리카노와 같은 기본 메뉴조차 5~6달러를 넘는 곳이 등장했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지난 3월 주요 메뉴 가격이 0.5~1달러 수준씩 인상됐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커피는 여전히 메인 음식이 아니라 밥을 먹고 난 후 후식으로 먹는 것”이라며 “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국내 시장에서는 소비자가 가격에 대한 저항이 얼마나 심할까를 고민하며 가격 인상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