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GNI)은 3만6194달러로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앞질렀다.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 중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6위를 차지했지만 10년째 1인당 소득 3만달러의 덫에 갇혀 있다. 윤석열 정부는 임기 내 1인당 소득 5만달러 달성을 비전으로 제시했지만 4만달러 구현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잠재성장률이 5년마다 1%포인트 하락하면서 저성장이 뉴노멀이 됐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성장 잠재력을 복원하지 않으면 2040년대 실질 성장이 멈출 수 있음을 경고했다. 낡은 정치, 저출산·고령화, 낮은 생산성, 반기업주의가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국민소득 4만~5만달러 진입을 위해서는 정치의 선진화가 필수 요건이다. 포퓰리즘 정치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교통 분야 3대 혁신 전략에 134조원, 철도 지하화 공약에 80조원이 소요된다. 민자 유치로 재정 부담을 최소화한다고 하지만 사업성이 의문시된다. 포퓰리즘은 망국병이라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 필요하다.
정치 선진국 미국조차 ‘미국 최우선주의’가 대선판을 흔들고 있다. 미국 국익 우선이라는 슬로건에서 공화, 민주 양대 정당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거부민주주의(vetocracy)가 정치 원칙을 무력화했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사라지고 여야가 정면으로 충돌해 서로를 거부하는 행태가 일상이 됐다. 21대 국회는 사상 최저인 35.1%의 법안처리율을 기록했다. 상생과 공존의 정치가 복원되지 않는 한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정치인의 경제 파이 독식이 경제의 정치화 현상의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정치가 선진화돼야 이익의 사유화가 최소화될 수 있다.
저출생·고령화 파고가 높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2명이다. 올해는 0.6명대로 떨어질 전망이다. ‘아이가 1순위’라는 육아 문화가 프랑스를 유럽연합 1위의 출산율 국가로 이끌었다. 출산 친화적 환경 조성과 일·가정 양립 문화가 중요하다. 고령화는 한국 경제의 뇌관이다. 내년에는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생산인구 부족이 심각하다. 생산직 25%가 5060세대다. 60대 제조업 인력이 사상 처음으로 20대를 앞질렀다. 데이비드 카드 미국 UC버클리 교수는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당면 문제로 고령화를 지적했다. 고령화에 따른 생산인구 격감과 재정수요 급증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성장 잠재력 훼손을 피할 길이 없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공동화된 지방 소멸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락하는 기업 생산성도 중요한 이슈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기업의 생산성 증가율은 2001~2010년 연평균 6.1%에서 2011~2020년 0.5%로 하락했다. 혁신기업의 생산성 증가율도 같은 기간 8.2%에서 1.3%로 낮아졌다. 혁신 역량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혁신의 질 하락은 기초연구 지출이 줄어든 데 주로 기인한다. 기초연구 지출 비중이 2010년 14%에서 2021년 11%로 줄었다. 원천기술의 연구 역량 강화가 시급한 까닭이다. 구글, 애플, 메타 같은 기술기업들이 기술인력 중심으로 경영진을 구성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경제를 옥죄는 반기업주의를 탈피해야 한다. 대기업 규제 대상 집단은 제도가 도입된 1986년 32개에서 올해 88개로 늘어났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100대 기업이 전체 기업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58.1%에서 2020년 45.6%로 하락했다. 대기업 비중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19개 국가 중 15위에 불과하다.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기업 규모 확대는 피할 수 없는 대세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 없는 한국 경제는 상상할 수 없다. 2022년 기준 해외투자는 772억달러지만 외국기업의 국내투자(FDI)는 304억달러에 그쳤다.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유턴이 지지부진한 것도 반기업주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장기 성장률이 중요하다. 지속 성장이 대한민국호의 향배를 좌우한다. 잃어가는 성장 잠재력의 복원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