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유럽의회 선거 이후 정치 지형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있다. 유럽의회 제1당인 유럽국민당(EPP)이 선전해 중도파가 과반수를 확보하긴 했지만, 강경 우파 약진에 따른 여파는 현재진행형이다. 유럽연합(EU)의 양대 축인 프랑스와 독일에서 강경 우파 정당의 입지가 강해지면서 앞으로 EU 내 강경 우파의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강경 우파 정당 지지율이 높아진 이유로 난민 문제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친환경 정책에 대한 불만도 하나로 꼽힌다. 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EU가 환경규제를 강화하면서 농민과 기업의 반발심이 커져서다.
유럽의회와 EU집행위원회는 향후 5년간의 정책 방향을 설정하면서 지도부를 구성 중이다. 먼저 주목할 내용은 EPP의 정책 제안이다. EPP가 경제성장을 우선시하고 친환경 정책의 완급을 조절하려는 점이 눈에 띈다. 경제성장을 동반하는 기후변화 대응을 강조하면서 기존의 ‘그린딜(Green Deal)’을 ‘녹색성장딜(Green Growth Deal)’로 전환한다거나, 내연기관 신차 판매금지 법안의 개정을 예고하고, 산림 황폐화에 영향을 미친 물품의 수입을 제한하는 ‘산림전용 방지 규정(EUDR)’ 등의 시행 시기를 조정하려는 점 등이다.
EU집행위원회의 지도부 구성도 관건이다. 현 EU집행위원장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의 연임이 유력한 상황이다. 그동안 그린딜 정책을 이끌어온 그가 연임하게 될 경우 어떤 정책에 우선순위를 둘지 눈여겨봐야 한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로는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가 지명됐다. 칼라스 총리는 러시아의 지명수배자 명단에 오를 정도로 반러 성향이 강해 향후 EU와 러시아의 갈등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지난 1일부터 올해 하반기 EU 이사회 의장국을 맡은 헝가리의 행보도 관심사다. 6개월마다 교대로 돌아가며 맡는 의장국은 EU 이사회 회의를 주관하며 의제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회원국 간 입장을 조율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극우·친러 성향의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그동안 민주주의와 법치, 우크라이나 사태,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 등에서 EU 회원국들과 다른 입장을 견지해왔기에 회원국들의 우려가 일고 있다.
헝가리는 하반기 EU 이사회 의장국 프로그램을 발표하며 EU의 경쟁력 제고를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MEGA)’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높은 인플레이션, 공공부채 증가, 낮은 생산성 등의 현 상황을 극복하고 중소기업 지원과 녹색·디지털 전환 촉진, 일자리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 보장을 우선으로 하겠다고 했다.
유럽의회와 EU집행위원회, 이사회는 상호 보완적으로 협력과 균형을 이루며 EU의 정책을 결정하고 운영한다. 유럽의회 선거 이후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EU의 의사결정 기관이 어떠한 정책과 리더십을 보일지 관찰하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
임태형 KOTRA 브뤼셀 무역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