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 팔았다.”(CNBC·블룸버그통신)
11일(현지시간) 8일 만에 사상 최고치 행진(S&P500지수 기준)을 멈춘 미국 뉴욕 증시를 두고 외신은 이렇게 평가했다. 미국의 올해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시장 예상치를 밑돌자 오는 9월 기준금리 인하가 확실해졌다는 판단에서 투자자들이 행동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대한 기대와 인공지능(AI) 열풍에 달아오르던 뉴욕 증시가 한풀 꺾이면서 본격적인 자금 이동(머니 무브)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제기된다. ○‘금리 인하 수혜주’로 이동
이날 ‘깜짝 하락’한 미국의 6월 CPI 상승률은 거침없던 뉴욕 증시에 찬물을 부었다. 2020년 5월 이후 처음으로 전월 대비 내려간 CPI는 금리 인하 기대에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통상 금리 인하 기대는 증시 랠리를 자극하는 재료로 작용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오히려 9월 금리 인하가 확정적이라는 판단에 기술주를 중심으로 차익 실현을 위한 매도세가 이어졌다.
빅테크 기업 주가는 일제히 급락했다. 엔비디아(-5.57%) 애플(-2.32%) 마이크로소프트(-2.48%) 알파벳(-2.93%) 등이 줄줄이 떨어졌다. 조지프 쿠식 캘러모스인베스트먼트 포트폴리오 전문가는 “그간 시장은 분열되고 한쪽으로 치우쳤다”며 “올해 강세이던 종목에서 약세 부문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순환매가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이에 비해 중소형주 위주로 구성된 러셀2000지수는 이날 3.57% 급등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금리 인하에 대한 확신이 금리 변동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기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채권시장 ‘환호’…잠 깨는 신흥국 통화채권시장은 환호했다. 인플레이션 지표가 예상 밖에 하락세를 띠면서 미국 국채 수익률은 급락(채권 가격은 급등)했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이날 장중 한때 전일 대비 0.013%포인트 떨어진 연 4.488%까지 주저앉았다. 로이터통신은 “일부 채권 트레이더가 미국 중앙은행(Fed)이 연내 세 차례(9월, 11월, 12월)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데까지 베팅하고 있다”고 전했다. 장기 채권을 대거 보유하고 있는 미국 지역은행 주가도 일제히 올랐다.
피벗이 머지않았다는 판단에 미국 달러화 가치는 떨어졌고 신흥국 통화는 강세로 돌아섰다. 유로화·엔화 등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이날 전일보다 0.55% 내린 104.47에서 거래됐다. MSCI가 집계하는 신흥국통화지수는 지난 5월 말 이후 최고 수준으로 뛰었다. ○“추세적 침체 가능성도”이날 뉴욕 증시를 두고 일시적 급락이 아닐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9월 금리 인하를 예상하는 주요 배경인 미국 고용시장 악화는 계속되는 추세다. 지난달 미국 실업률은 4.1%로 2년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득 감소는 기업의 이익 둔화로 이어지고 다시 고용 축소로 연결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크레이그 존슨 파이퍼샌들러 연구원은 “시장 모멘텀(동력)이 약화하는 위험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며 “S&P500지수가 올여름 10% 정도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낙관론도 만만치 않다. 투자 자문사 에버코어ISI는 “AI, 인플레이션 진정, Fed의 금리 인하 의지를 종합해봤을 때 골디락스(물가 안정 속 경제 성장)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며 연말 S&P500지수 전망치를 6000으로 제시했다. 일각에선 ‘1995년 그린스펀 시나리오’를 기대한다.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둔화하는 동시에 성장세가 주춤해지자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해 소프트랜딩을 이끌었다. 그해 S&P500지수는 34% 상승했다. 마켓워치는 “올 2분기 기업의 실적 시즌을 거치면서 연말까지는 뉴욕 증시에 대한 월가의 견해가 엇갈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인엽/김은정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