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돈 380억…스포츠인 척 도박판 벌인 '홀덤대회'

입력 2024-07-11 17:54
수정 2024-07-19 18:59
경찰이 ‘시드권’으로 불리는 대회 참가권을 유통해 2년간 총 판돈 380억원 상당의 홀덤 대회를 벌인 일당을 도박장개설죄로 검거했다. 이들이 ‘마인드 스포츠’라고 주장하며 열어온 홀덤대회를 경찰이 도박으로 규정하고 대회 운영사, 시드권을 유통한 홀덤펍, 매매상 등을 한꺼번에 검거한 첫 사례로 관련 업계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본지 2월 27일자 A25면 참조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는 홀덤대회 운영사인 A사 대표 40대 김모씨 등 12명을 도박장소개설 혐의로, 홀덤펍 업주와 시드권 판매상 등 204명을 도박장소개설방조 혐의로 검거했다고 11일 밝혔다.

A사는 2022년 1월부터 올 1월까지 수도권의 대형 호텔에서 총 47차례 홀덤 대회를 연 혐의를 받는다. 전체 판돈은 380억원 규모에 달했다. 경찰은 A사가 이 중 약 80%를 참가자에게 상금으로 지급했고, 20%인 80억~90억원가량을 수익으로 취했다고 보고 있다.

A사는 도박죄를 피하려고 현금 대신 상위 대회 참가권인 시드권을 활용해 사업을 벌여온 메이저 홀덤업체 중 한 곳이다. 참가자들은 홀덤펍 대회에서 입상하거나, 오픈채팅방 등에서 현금으로 교환한 시드권을 들고 A사 대회에 참여했다. A사가 벌인 47개 대회엔 중복인원을 포함해 약 5만 명이 참가했고, 단일 대회의 1등 상금이 1억5000만원이 넘는 경우도 있었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A사가 시드권을 광범위하게 유통해 수익을 올린 정황도 확인했다. 시드권을 매매한 홀덤펍 업주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수십억원어치 시드권을 사고판 이른바 ‘딩거방’ 운영자도 붙잡힌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번에 A업체 관계자들에게 고스톱 대회와 내기골프 등의 판례를 참고해 도박장개설죄를 적용했다. 증거 인멸 우려가 인정되는 김 대표는 지난달 구속됐다. 경찰 관계자는 “A업체는 유명 프로게이머를 내세워 홀덤이 합법 스포츠라고 주장했지만, 내기가 가미된 명백한 도박”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A업체와 비슷하게 시드권을 활용해 영업한 다른 대형 운영사로도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A사에 대한 대대적 수사 이후 다른 대형 홀덤 업체들은 시드권을 없애고, 스폰서 상금만 있는 대회만 여는 방식으로 영업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단속이 강화된 이후 홀덤펍 중 일부는 가정집을 빌려 소수 참가자만 익명 SNS로 모집해 벌이는 ‘하우스 홀덤’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불법 홀덤대회에 참여하는 일반인에게도 주의를 당부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금과 진배없는 시드권으로 게임에 참여하고, 나누는 건 도박이자 명백한 불법”이라고 강조했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