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대표적인 도심 고밀복합개발 후보지이자 오세훈 서울시장의 역점사업인 중구 세운지구 개발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문제로 좌초 위기에 직면했다. 금융당국의 ‘PF 옥석 가리기’ 기준에 따라 ‘양호·보통’ 사업장으로 분류됐는데도 대주단이 대출 연장을 거부하고 있어서다. 최상위 우량사업장으로 꼽히는 세운지구 개발이 차질을 빚으면 다른 도심 개발에도 파장이 미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11일 개발업계에 따르면 세운 재정비촉진지구 3-2구역과 3-3구역, 3-9구역에 대한 총 5900억원의 브리지론(토지비 대출)이 오는 23일 만료된다. 세 구역은 최근 금융당국의 PF 옥석 가리기 기준에 따라 대주단으로부터 각각 양호(3-2)와 보통(3-3, 3-9) 사업장으로 분류됐지만 대출 만기 연장에 차질을 빚고 있다. 양호로 분류된 3-2구역은 새마을금고가 “6개월 이자를 미리 내지 않으면 연장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두 구역도 교보생명 교직원공제회 등이 만기 연장을 거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대주단 스스로가 사업성 분류를 양호와 보통으로 평가해 놓고 ‘만기 연장은 사업성과 별개’라는 논리를 펴고 있어서다. 금융당국은 지난 5월 PF 사업성 평가 등급을 4단계(양호·보통·유의·부실 우려)로 세분화하고, 사업성 부족 사업장(유의·부실 우려)의 대주단은 당국에 재구조화, 경·공매 등의 개선 계획을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의 ‘부동산 PF 연착륙 방향’을 발표했다. 시행사 관계자는 “시장 정상화 대책에 반하는 행태”라며 “만기 연장을 거부하는 명확한 근거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세운지구가 금융 조달에 차질을 빚을 경우 서울 도심 개발 전체로 문제가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세운지구 프로젝트는 인허가 리스크가 없는 우량사업장인 데다 시공사 선정도 사실상 마무리된 곳이다. 시행사인 디블록(옛 한호건설그룹)은 토지를 70~90% 확보했고, 가장 까다로운 인허가 단계인 건축 심의까지 마쳤다. 3-2와 3-3은 시공사로 포스코이앤씨를 정했고, 3-9 역시 현대엔지니어링과 우선협상 계약을 맺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정상화 대책이 즉각적으로 시행되지 않으면 우량사업장이 부실화하고 전체 개발 시장이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운지구는 2022년 4월 서울시 ‘녹지 생태 도심 재창조 전략’의 선도 사업지로 선정됐다. 구역을 묶고 건축 규제를 완화해 고층·고밀 개발을 유도해 도심에 녹지 14만㎡를 확보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3개 구역에는 최고 43층 오피스빌딩 4개 동이 들어선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