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교환사채(EB)로 자금조달에 나서는 상장사가 늘고 있다. 주가가 바닥인 기업이 금융비용을 줄이기 위해 마련한 새 방책이다. 증시가 상승세에 접어듦에 따라 운용사들의 자사주 투자 심리는 나쁘지 않은 분위기다. 다만 자사주 소각을 장려 중인 정부 정책 방향에는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호텔신라는 지난 5일 자기주식 213만 5000주에 대한 사모 EB 처분결과보고서를 공시했다. 발행된 EB 총액은 1328억원 상당으로, 호텔신라 시가총액의 6.54%에 해당한다. 표면·만기 이자율은 0%다.
호텔신라 주가가 올들어 18.75% 떨어진 만큼, 이자가 없어도 메자닌 운용사들 인수 선호도는 높았다는 후문이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일부는 면세사업 반등이 어렵다며 인수를 포기했지만,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다시 매입한다는 옵션이 달려 있어 전반적으로 인기가 좋았다”고 설명했다. 유니드(154억원), 선익시스템(180억원), 알서포트(37억원) 등 다른 상장사도 잇따라 자사주 기반 EB 발행에 뛰어들고 있다. 공통적으로 주가가 단기 악화한 가운데, 기업 기초체력을 강조하며 자금조달에 나선 곳들이다.
원래 채권발행시장에서 상장사들의 주력한 조달방식은 전환사채(CB)였다. 최근 금리가 0%로 발행되는 ‘제로금리 CB’가 흔해질 정도로 조건도 우호적이다. 그런데도 자사주 기반 EB 발행이 늘고 있는 배경에는 표면적으로 지분 희석이 없다는 EB의 특성이 거론된다. CB는 만기 때 주가가 오르면 주식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대주주 입장에선 지분율이 낮아진다. 하지만 EB는 만기 시 자사주를 지급하기 때문에 이런 우려가 없다.
하지만 시장 일각에선 정부 ‘밸류업 정책’이 구체화하기 전 골칫덩이가 된 자사주를 처리하기 위한 방책이란 의견도 나온다. 당장 금융위원회가 3분기 중 자사주 처분 목적 등을 구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는 정책 시행을 예고한 상태기도 하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 압력이 더 커지기 전에 미리 용처를 정해버리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