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 뒤 첫승(윤이나·21), 생애 첫 승(최예림·25), 그리고 2년만의 통산 2승(이가영·25).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이 순간 가장 간절한 바람을 가진 세 선수가 7일 롯데오픈(총상금 12억원) 최종라운드 연장전에서 맞붙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가영이 웃었다. 2년간의 우승 가뭄을 끊어낸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이가영이 이날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파72)에서 열린 대회 최종라운드에서 1언더파 71타를 쳐 최종합계 18언더파 270타를 기록했다. 최예림, 윤이나와 동타를 이루며 이어진 연장전에서 혼자 버디를 잡아내며 통산 2승에 성공했다. 2022년 우승 뒤 긴 가뭄 이가영에게는 늘 '착한 골퍼'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토끼같은 눈망울에 경기 내내 차분함을 유지해서 생긴 별명이다.
그 안에는 누구보다 뜨거운 승부욕이 자리잡고 있다. 프로데뷔 98경기 만에 거둔 첫 승이 2022년 10월 동부건설.한국토지신탁 챔피언십이라는 점이 그를 반영한다. 변형 스테이블포드 방식으로 공격적인 플레이가 필요한 대회에서 우승하며 '마음이 약하다', '착하다'는 이미지를 씻어냈다.
하지만 2승이 좀처럼 잡히지 않아 긴 마음 고생을 겪었다. 골프계에는 "2승을 해야 진짜 우승할 수 있는 선수"라는 말이 있다. 첫 승은 어쩌다 운이 좋아 할 수 있지만 2승은 충분히 준비된 사람만이 밟을 수 있는 고지라는 뜻이다.
이가영이 그 고지에 이르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특히 올 시즌은 더욱 혹독했다. 앞서 출전한 15개 대회에서 2개 대회에서 커트탈락했다. 톱10은 3번 기록했지만 마지막날 주춤하는 모습이 이어지면서 "뒷심이 약하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이번 대회에서 이가영은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첫날부터 선두권에 이름을 올린 그는 2, 3라운드에서 압도적인 플레이로 3타차 선두로 올라섰다. 하지만 또다시 최종라운드에서 흐름이 끊겼다. 앞서 사흘간 쏟아지던 버디가 최종라운드에서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이븐파로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이, 추격자들이 빠르게 따라붙었다. 8타나 떨어져있던 윤이나가 9언더파 맹타를 휘두르며 선두로 올라섰고 생애 첫승을 노리는 최예림도 6타를 줄이며 이가영을 압박했다. 한때 선두자리까지 내어줬지만 17번홀(파3) 버디에 이어 18번홀(파4)에서 파로 타수를 지켜내 승부를 연장으로 이어갔다. 윤이나·최예림 추격 뿌리쳐이번 대회에서 18번홀은 '골프해방구'로 운영됐다. 대회 내내 흥겨운 음악이 울려퍼졌다. 이가영이 치른 두번의 18번홀 플레이 때는 싸이의 '챔피언'이 홀을 가득 메웠고, 사회자는 갤러리들의 함성과 박수를 유도했다.
흥겨운 분위기는 연장전에서도 이어졌다. 그래도 이가영의 눈빛은 한층 더 냉정해졌다. 두번째 샷을 핀 1m 옆에 붙이며 세 선수 중에 가장 가까운 자리에 공을 보내며 기회를 만들어냈다. 윤이나, 최예림의 버디퍼트가 홀을 살짝 비껴나갔지만 이가영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결국 버디를 잡아냈고 '챔피언'을 자신의 노래로 만들었다. 이가영은 "17번홀 버디 이후 저에게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연장에서는 떨지않았다"고 말했다.
윤이나와 최예림은 다시 한번 연장에서 우승을 놓치며 다음을 기약했다. 윤이나는 이날 보기 없이 버디만 9개 잡아내는 맹타를 휘둘렀지만 연장전에서 3.5m 버디퍼트를 놓친 것이 뼈아팠다. 윤이나와 최예림은 각각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 맥콜 모나용평 오픈에서 박현경에게 연장전에서 패배한 바 있다.
3주 연속 우승에 도전한 박현경은 합계 11언더파 277타를 쳐 이다연과 함께 공동 9위에 올랐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