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백신 대란을 해결한 건 플랫폼 기업이었다. 백신 조회와 접종 예약 서비스를 연 네이버와 카카오 애플리케이션은 일시적으로 질병관리청 홈페이지나 동사무소의 기능을 가졌다. 정부의 역할을 플랫폼이 일정 부분 나눠 받은 것이다. 네이버로 검색하거나 뉴스를 보고, 카카오로 소통하는 등 국민 대다수가 사용할 정도로 대한민국의 일상에 두 플랫폼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잔여 백신 조회가 통신장애로 ‘먹통’이 되자 일시적 혼란이 빚어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데이터를 자원으로, 알고리즘을 법 집행 도구로 삼은 거대한 플랫폼 기업이 국가의 입법, 행정, 사법 체계를 벗어나 독자적 시스템을 만드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를테면 유튜브에 불법 복제물이나 성인물 등 부적절한 콘텐츠가 올라오면 정부가 단속하기 전 플랫폼 알고리즘이 차단을 통해 자체 징계를 내리는 식이다. 페이스북은 적어도 이용자에 한해선, 미국 중앙정보국(CIA)보다 더 자세하게 인종, 종교, 성별, 성격, 정치 성향을 파악하고 있다. 워싱턴 DC에 연방정부가 있고, 실리콘밸리에 구글 등 거대 플랫폼 기업이 있는 미국은 동부엔 민주 공화국이, 서부엔 플랫폼 공화국이 들어서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신간 <플랫폼 공화국>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200여년간 글로벌 헤게모니를 쥐었던 ‘민주 공화국’의 시대가 저물고 ‘플랫폼 공화국’이 새로운 질서로 자리 잡았다고 규정한다. 소셜미디어, 검색 엔진, 온라인마켓 등 플랫폼에서 벗어나면 더는 사회적 소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와 생성형 인공지능(AI)의 출현은 새로운 권력인 플랫폼 기업을 중심으로 경제질서가 재편되는 결정적 분기점이 됐다.
편리한 생활을 돕고, 새로운 고용 기회도 만든다는 점에서 플랫폼 서비스의 무한 확장을 그저 환영할 일일까.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깊게 연구해온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 물음표를 던진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용자들에게 플랫폼 질서를 거부하거나 선택할 권리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쿠키나 앱 추적으로 수집돼 나타나는 맞춤형 광고를 마냥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자칫 ‘디지털 권위주의’가 고개를 들 수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과 데이터 알고리즘 시대에 대한 막연한 우려를 구체적으로 풀어놨다는 점에서 책은 읽어볼 만하다. 플랫폼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 질서가 구축되는 속도에 비해 정작 이를 규제할 마지막 그물망인 법·제도는 성기다는 것을 다양한 사례로 제시했다. 아무런 제어 없이 팽창하는 플랫폼 권위주의 시대에선 오히려 개인의 자유가 사라질 수 있다고 지적하는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플랫폼 공화국이 탄생했을지 모르지만, 이용자가 꿈꾸는 공화국의 가치를 실현하기까진 아직 거리가 멀다.”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