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노조의 사회적 책임과 고민[이지평의 경제돋보기]

입력 2024-07-06 14:10
수정 2024-07-06 14:11


일본의 금년도 춘투 임금인상률이 대기업에서는 5% 이상의 높은 수준에서 타결됐다. 2년 연속의 높은 인상률이다. 이번 협상에서도 사용자 측과 노조 측은 큰 의견대립이나 치열한 교섭도 없었으며, 사용자 측이 노조의 임금인상안을 다 인정하는 사례가 많았다. 어떻게 보면 이는 노조의 태만으로 볼 수 있다. 5%의 임금인상이 아니라 10% 정도를 요구해서 7~ 8%의 임금인상안을 쟁취할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30년 장기불황 과정에서 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았던 가운데 일본 노조는 임금 인상보다 기존 근로자의 고용 안정을 우선해 왔던 디플레이션 마인드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기불황 과정에서 비정규직의 도입 확대, 신규 채용 억제로 인해 일본 젊은층의 취업 여건이 악화하기도 했다. 비정규직 확대와 함께 기업의 교육 투자도 부진해 고도 경제성장기의 원동력이었던 근로 현장에서의 ‘교육-생산성 향상-임금인상’의 선순환이 약해졌다. 젊은층의 취업 여건 악화는 결혼 기피, 저출생 문제도 유발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근로 여건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인 노조 활동은 국가 근간에도 중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대다수 국민의 생활 기반이 근로 여건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노조로서는 미래의 젊은 근로자, 고령자, 여성 등도 포함한 포섭적인 시각에서 사회적 책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실 일본 정부도 기존의 고용 안정이나 양적 고용 확대에만 주력했던 모습에서 벗어나 저출생·고령화 사회 대응, 생산성 향상을 위한 근로자의 재교육 체제 강화, 임금인상 유도 등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저출생·고령화 대응 측면에서는 사회적인 수명 연장에 발 맞춰 근로자의 현역 기간을 연장해 연금 지급 연령을 높이고 복지 및 연금을 확충하면서도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일본 기업도 연차에 따라 승급되는 연공형 임금체계를 개혁하면서 실력, 성과, 직무 등을 평가해 생산성에 맞게 임금을 결정하는 시스템으로 이행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일본 노조로서도 이런 인사 혁신 흐름에 따라 생산성 향상에 협력하면서 근로자의 교육 환경 개선, 새로운 인사 평가 시스템 도입 및 정착에 협력하는 과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자동차기업 혼다의 경우 3만8000명 조합원을 보유한 노조가 ‘사람 및 조직의 활성화에 의한 생산성 향상’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현재가 100년에 한 번 있을 자동차산업의 대전환기’라는 인식하에 이에 대응하기 위한 조합원 간 지식공유 플랫폼 ‘TUNAG’를 도입 및 운영하고 있다. 이는 자동차산업의 과제에 대한 구성원들의 지식을 심화시키면서 생산성 향상 방법을 종업원 간에 공유하는 역할을 한다. 구체적으로는 낭비를 없애는 방안과 부가가치를 확대하는 방안 두 가지 측면에서 지식이나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 질의응답도 하면서 각자의 생산성 향상을 서로 돕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본과 같은 저출생·인구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의 정년 연장과 함께 연금 지급 연령을 계속 늦추면서 연금의 소득대체율을 확대하는 등 생애주기별 복지를 확충하는 동시에 복지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는 것이 과제가 될 것이다. 노조도 사회적 과제 해결을 염두에 두면서 임금체계의 혁신, 생애주기, 디지털 및 녹색기술 트렌드 등에 대응한 근로자의 능력과 생산성 향상을 지원하는 데 효과를 낼 수 있는 역량 강화 지원 시스템 구축에 협력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일본의 경우처럼 평생 현역 사회 구축 과정에서 단계적 대응 및 협력도 중요하다. 일본에서는 정년이 70세 이상으로 인상하는 것이 추세이며, 고령자에 대한 임금 차별도 약해지고 있다. 그러나 개혁의 초기에는 일정 연령에서 임금을 일률적으로 감축해 젊은층의 고용을 활성화하는 방식도 필요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