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하반기부터 기업대출 조인다

입력 2024-06-30 17:46
수정 2024-07-08 16:18

최근 3년 새 기업대출을 40조원 넘게 늘리며 ‘기업금융 경쟁’을 촉발한 하나은행이 하반기부터 신규 기업대출을 조이기로 했다. 은행권의 과당 경쟁에 따른 수익성 하락과 연체율 상승 등 건전성 우려가 제기돼서다. 신한, 우리 등 다른 시중은행도 기업금융의 무게중심을 성장에서 수익성 관리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고금리 장기화로 기업의 자금 수요가 증가하면서 펼쳐진 은행권의 기업대출 자산 확대 경쟁이 끝나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7월 1일부터 수익성이 낮은 기업대출 자산을 확대하지 않기로 했다. 영업점과 기업금융전담역(RM) 등에게는 ‘일정 금리 수준을 밑도는 기업대출을 내주지 말라’는 가이드라인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격적으로 기업대출을 늘려온 하나은행이 태세를 전환한 것은 수익성과 건전성이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2021년 말 126조3920억원이던 하나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올 1분기 167조7540억원으로 41조3620억원(32.7%) 늘었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은행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하지만 작년부터 우리은행이 ‘기업금융 명가 재건’을 목표로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고, 신한은행도 기업대출 확대로 맞불을 놓으면서 은행권에서는 조달 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역마진’ 대출이 속출했다. 출혈 경쟁에 따른 부실 대출이 늘어나며 작년 1분기 0.19%였던 4대 은행의 기업대출 평균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올 1분기 0.32%로 뛰었다.

한국은행은 최근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금리 상승기에 확대한 기업대출이 은행의 대손충당금 증가 등 수익성 저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산업별 리스크를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금리 장기화로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하고 이자 상환 부담이 가중된 가운데 은행권이 대출 경쟁에서 발을 빼면서 신용도가 낮은 기업은 돈을 구하기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적 부진과 재무 지표 악화가 겹치면서 국내 기업 신용도는 줄줄이 하락하고 있다. 국내 신용평가사가 올 상반기 신용등급이나 전망을 내린 기업은 총 74곳인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 중동 등의 거센 추격을 받는 석유화학, 부동산 경기 침체 여파에 흔들리는 건설과 건축자재 업종 기업 다수의 신용도가 강등됐다. 금융, 유통, 게임 업종에서도 하향세가 나타났다. 신용도가 올라간 기업은 44곳에 그쳤다.

김보형/장현주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