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통령선거 개혁파 돌풍...정치 변화 '작은 기대'

입력 2024-06-30 15:07
수정 2024-06-30 15:17


이란 대통령 보궐선거에서 온건파 후보가 득표율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이 벌어졌다. 서방과 관계 개선, 히잡 착용 단속 합리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워 표심을 사로잡았다. 결선투표는 내달 5일 치러질 예정이다. 이란에선 2022년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이 경찰에 체포돼 의문사한 사건을 계기로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는 등 정권 대한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 이번 선거 결과 이란 정치와 사회에 변화가 나타날지 주목된다 중동 긴장 완화 '희망'29일(현지시간) 이란 내무부와 국영방송에 따르면 전날 치러진 선거 결과 마수드 페제시키안(70) 후보가 1041만여표(42.5%)로 1위를 차지했다. 이번 선거는 반미 강경파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이 지난달 헬기 추락사고로 숨진 후 급작스레 치러졌다. 페제시키안 후보는 의사 출신 5선 의원으로 대선 후보 가운데 유일하게 온건파로 평가된다. 이번이 3번째 대선 도전이며 처음으로 헌법수호위원회 후보 자격 심사를 통과해 실제 선거를 치렀다.

페제시키안 후보는 핵협정을 부활시켜 국제사회 복귀를 추진하고, 도덕 경찰(종교 경찰)의 단속을 합리화하겠다는 등의 정책을 내세웠다. 서방의 제재를 받는 이란은 산유국임에도 환율 불안과 연간 40%의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페제시키안 영상 메시지를 통해 "우리나라를 가난, 거짓말, 차별, 불의로부터 구하자"라고 호소했다.

신정일치체제의 이란은 대통령 위에 최고종교지도자(아야톨라)가 버티고 있음에도, 페제시키안이 당선된다면 변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나온다. 35년째 재임 중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85세의 고령이며, 사망한 라이시 전 대통령 이후 후계 구도가 불투명하다. 선거일 영국 BBC방송은 과거 집권한 이란 온건파의 실패로 많은 사람이 환멸을 느꼈다는 점과 대통령의 운신 폭이 좁다는 것을 지적하면서도 "일부 시민들은 작은 변화의 희망에 이끌려 투표장에 나서고 있다"이라고 보도했다.

이란의 대외 정책이 강경 일변도에서 조금 물러나면, 중동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될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온건 성향 하산 로하니 정부 시절인 2015년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가 타결돼 이란의 서방 석유 수출이 재개됐었다. 최종 선거는 박빙 예상페제키시안 후보는 오는 5일 결선투표에서 강경 보수 성향 사이드 잘릴리(59) 후보와 맞붙는다. 1차 투표에서 잘릴리 후보는 947만여표(38.6%)로 2위에 올랐고 가장 유력한 후보로 예측됐던 모하마드 바게리 갈리바프(63) 후보는 338만여표(13.8%)를 얻는 데 그치며 결선에서 탈락했다.

외교관 출신 잘릴리 후보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측근이자 '충성파'로 평가받는다. 혁명수비대 일원으로 참전한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크게 다쳐 오른쪽 다리를 절단해 '살아있는 순교자'로 불린다. 1차 투표에서 보수파 후보 3명으로 분산됐던 보수층이 결집한다면 잘릴리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 나온다.

페제시키안 후보의 우세를 점치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페제시키안 후보가 1차 투표에 선전하면서, 앞서 투표를 포기했던 젊은 층이 투표장에 나올 것이란 예상이다. 이란 국영방송에 따르면 이란의 1차 선거 투표율은 40.3%에 불과했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역대 대선 가장 낮은 투표율이다. 이란 외교 정책 전문가인 하미드 레자 골람자데는 알자지라 방송에서 "투표율이 50%를 넘지 못한 것은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투표장 나오지 않은 것"이라며 "(1차 투표를 하지 않았으나)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