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방문판매 1위’ 화장품 브랜드인 인셀덤 소속 주부 방문판매원들이 악성 재고로 몸살을 앓고 있다. 수십만 명에 달하는 판매원에게 회사가 밀어내다시피 한 화장품 물량이 상당하다 보니 일부 판매원이 정가의 반값에 온라인 판매에 나서 제품 가격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5500만원어치의 화장품을 사들여 물량을 떠안게 된 대리점주는 줄잡아 3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방문판매원 60%가 인셀덤 소속
25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인셀덤 화장품을 판매하는 리만코리아 소속 후원방문판매원은 58만7000명 규모다. 화장품을 포함한 모든 업종의 후원방문판매원이 총 91만3000명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0명 중 6명은 리만코리아 단일 기업의 화장품(인셀덤) 판매원인 셈이다.
업계에 따르면 4~5년 전만 해도 인셀덤 방문판매원은 3000여 명에 불과했다. 회사는 2018년 전후로 판매원 모집에 공격적으로 나서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 등을 제친 방판 화장품 1위 업체로 올라섰다.
문제는 회사가 ‘외형 키우기’에 급급하면서 불거졌다. 회사와 최상위 매니저들은 “대리점주가 되면 정가 대비 50% 가격에 물건을 공급받을 수 있어 수익이 더 늘어난다”고 유혹했다. 그러면서 “대리점주가 되기 위해선 5500만원어치 물건을 구매해야 한다”고 권했다. 즉 판매가 24만원인 ‘인셀덤 기초 5종 세트’를 12만원에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리점주가 된 이들은 이후 악성 재고를 떠안게 됐다. 주부 정모씨(40) 집 한구석에는 ‘부스터 세럼’ ‘액티브 크림 EX’ 더미가 수북히 쌓여 있다. 이는 판매원 일부가 물건값을 조금이라도 건지러 쿠팡, G마켓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화장품 전문 판매업자에게 물량을 반값도 안 되는 헐값에 던져 가격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현재 인셀덤 5종 세트는 인터넷 최저가로 대리점주들이 물량을 떼오는 가격보다 싼 10만원대에 팔릴 정도다. 정씨는 “물건이 워낙 헐값에 팔리다 보니 방문판매를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프라인 ‘방판’이 ‘온라인’에 무너진 셈이다.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대부분의 대리점주는'에스지엠(SGM·성공매니아)' 소속인 것으로 전해졌다. SGM은 리만코리아와 교육 위탁 계약을 맺고 있는 3곳의 교육 컨설팅사 중 한 곳으로, 방문판매원들에게 영업 전략을 지도하는 실질적인 역할을 한다. SGM 소속으로 2년 넘게 교육받은 한 전직 대리점주는 "다른 교육컨설팅사인 W본부나 SS본부에는 잡음이 없는데 유독 SGM에서만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리만코리아 관계자는 "일부 사업자들의 과도한 영업 행태에 대해서 모두 관리, 통제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 "다단계 전환 검토 중"이렇게 회사 및 최상위 매니저 등에게 ‘영업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대리점주는 300여 명 규모다. 1인당 최소 1000만원, 2000만원어치 이상의 재고를 떠안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회사와 최상위 매니저가 사기를 친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대리점주 A씨는 “매니저들은 일반 판매원을 대리점주로 만든 대가로 1000만원 수준의 후원금(인센티브)을 본사에서 받는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이들은 본인 아래 대리점주의 판매 실적을 책임지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후원방문판매업체로 등록된 리만코리아는 판매원과 하위 판매원의 실적에만 수당(인센티브)을 지급할 수 있다. 그러나 대리점주들은 리만코리아·SGM의 5500만원어치 ‘물량 밀어내기’가 다단계와 다름없다는 입장이다. 공정위도 급격하게 세를 불린 리만코리아 영업 방식의 불법성을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리만코리아를 자본금 요건이 있는 다단계 판매업자로 사업자 등록을 변경하라는 시정명령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리만코리아 관계자는 “인셀덤 제품은 방문판매원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판매되고 그 외 판매는 제재하고 있다”며 “화장품 유통업체는 제품 입수 경로를 알기 어려워 제재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초 대리점주 개설 시 충분한 숙려기간을 두고 일정 기간 내에는 대리점 계약을 철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방문판매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3개월 내 반품 규정을 준수해 해당 기간 내 반품 요청을 할 경우 모두 반품을 수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다빈/정희원 기자 davin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