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조원 규모로 급성장한 국내 마약류 시장에서 가장 많이 남용되는 것은 ‘필로폰’으로 알려진 메스암페타민이다. 필로폰은 대마, 마약과 다른 향정신성의약품(향정)이며 ‘노동을 사랑한다’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이름을 딴 각성제로 일본에서 처음 개발됐다.
25일 대검찰청의 ‘2023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필로폰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향정 사범은 지난해 1만9556명으로 전체 마약류 사범의 70.8%를 차지했다. 대마 사범(14.8%)과 마약 사범(14.4%)을 크게 앞선 수치다.
유리 조각처럼 보이는 필로폰의 역사는 18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의약계 아버지로 불리는 나가이 나가요시가 천식 치료제 연구 중 합성에 성공한 후 태평양전쟁 시기 일본 정부가 군인과 노동자에게 배포할 정도로 각성 효과가 강했으나 부작용으로 1951년 금지됐다. 이후 암시장으로 흘러들어 1960년대 한국이 생산 거점이 됐다가 1990년대 중국, 2000년대 동남아시아로 이동했다. 높아진 인건비와 정부 단속을 피해 지금은 캄보디아, 미얀마로 옮겨간 상황이다.
병원에서 처방받을 수 있는 졸피뎀, 프로포폴, 케타민, 펜타닐 패치, 디에타민 등 향정도 은밀히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향정 사범의 33.3%가 20대, 7%가 10대일 정도로 청년층을 중심으로 깊숙이 퍼지고 있다.
특히 펜타닐은 1959년 얀센제약이 모르핀의 대안으로 개발한 진통제로 장시간 수술을 가능하게 한 획기적 마취제였으나 강한 중독성 때문에 미국에서 가장 많은 약물 남용 사망자를 내는 ‘죽음의 마약’이 됐다. 국내에서도 10대 청소년이 펜타닐 패치를 흡입한 사례가 적발돼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압수된 펜타닐(JWH-018)은 40㎏ 정도로 2021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마약 공급과 유통 시장이 커지면서 가격은 하락세를 보인다. 검찰 한 관계자는 “필로폰 1회분(0.05g) 시세가 과거 10만원에서 현재 4만~6만원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검경이 압수한 필로폰은 405㎏으로 전체 압수 물량(998㎏)의 40%를 차지했다. 시가로는 3240억~8100억원 상당이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