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전남 영광의 한 감자밭. 35도를 웃도는 불볕 더위 속 수확에 나선 농민들은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었다. 한 농민은 “작황이 나쁘진 않지만 무더위가 일찍 찾아와 수확 직전 썩어버린 감자도 종종 나온다”며 “올 여름엔 비까지 많이 온다고 하니 걱정”이라고 말했다.
올 여름 역대 최강의 폭염이 닥칠 것이란 전망에 농식품발(發) 물가 불안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수확의 성패를 좌우할 폭우 역시 예년보다 늘어날 전망이다. 역대급 폭염폭우 온다는데24일 기상청에 따르면 다음달 평균 기온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을 확률이 각각 40%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 8월 평균 기온에 대해서도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을 확률을 각각 30%, 50%로 내다봤다. 7~8월 ‘역대급 폭염’이 닥칠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의미다.
폭염은 이미 여름의 초입인 6월부터 시작됐다. 기상청이 이달 1~20일 전국 관측 지점 295곳의 최고기온을 분석한 결과, 77곳(26%)에서 역대 6월 최고기온 1~3위를 경신했다. 폭우도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크다. 기상청은 올 7~8월 예상 강수량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많을 확률이 각각 40%에 달할 것으로 봤다.
현재 농산물 거래 시장은 아직 안정적인 모습이다. 팜에어·한경 농산물가격지수(KAPI)를 산출하는 가격 예측 시스템 테란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KAPI 지수는 114.05으로 1년 전(120.4)보다 5.3% 낮은 수준이다. 올 들어서는 30% 넘게 하락했다.
4월부터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대부분 품목의 출하량이 회복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kg당 가격이 8000원선까지 치솟았던 토마토의 경우 현재는 1259원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농업계에선 “곧 다가올 폭염·폭우를 고려하면 현재의 작황 호조세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낙관하긴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권민수 록야 대표는 “노지 감자 수확은 여름 내내 지속되는데 고온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가 또 폭염이 찾아오는게 가장 두렵다”며 “이렇게 되면 수확도 하기 전 그야말로 완전 푹푹 쪄버린 ‘찐 감자’가 된다”고 했다. 2018년 여름 물가 1.4% 오르기도일부 품목은 이미 폭염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양상추와 상추 도매가는 지난 1주일 동안 각각 138.6%, 59.6% 올랐다. 상추류는 고온에 취약한 특성이 있다.
6월 둘째주부터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폭염이 본격화하자 상품성이 떨어지는 물량이 다수 출하됐다. 테란의 가격 예측 모델에 따르면 현재 ㎏당 3274원인 상추값은 8월 5052원, 9월 6127원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측됐다.
전문가들은 이상기후가 계속될 경우 장기적으로 농업 생산성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이상기후는 작물 생산과 품질 저하, 병해충 확산, 토양 환경 변화, 수자원 불균형 확대, 재해로 인한 재배시설 붕괴 등을 초래한다.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2018년이 대표적이다. 당시 7월과 8월 평균기온은 평년 대비 각각 2.9~3.9도, 1.9~3.7도 높았다. 그러자 7~8월 평균 소비자물가가 전년 대비 1.4% 올랐다. 양배추(23.3%), 고구마(20%), 무(17.1%), 당근(16.3%) 등의 가격이 전년 대비 상승했다. 재배면적 해마다 줄어지난 수년간 여름철마다 이상기후가 반복되자 일부 품목에서는 재배면적 감소가 나타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여름배추 재배면적은 2023년 5242㏊에서 올해 4957㏊로 줄었다. 당근과 무, 마늘 역시 여름철 재배면적 감소 등으로 가격 상승이 예상됐다.
농업인구의 감소, 경지면적 축소 등도 향후 농산물 가격 변동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은 2033년까지 재배면적이 감소하는 품목으로 배추, 무, 당근, 마늘, 감자, 사과, 배, 감귤, 포도 등을 꼽았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17일 “농산물 가격 급등락의 원인은 기후 변화”라며 “기후 변화에도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투자 방안과 농산물 수급 안정 방안 등을 연말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오형주/라현진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