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가스 수요 급증"…LNG 사업 확장하는 에너지 대기업들

입력 2024-06-24 16:17
수정 2024-06-24 16:19

유럽 에너지 대기업 셸이 싱가포르 액화천연가스(LNG) 기업을 인수한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를 제치고 베팅에 성공한 결과다. 천연가스 수요가 증가할 것이란 전망에 LNG 사업을 확장하는 글로벌 대기업들이 늘고 있다.

인공지능(AI) 열풍으로 전력 소비 폭증이 예상됨에 따라 가스 발전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천연가스는 석탄·석유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깨끗해 에너지 전환의 ‘가교 연료’로 여겨지는 것도 장점이다.○LNG에 올인하는 셸셸은 지난 18일 “싱가포르 펀드 운용사 테마섹으로부터 싱가포르 가스 기업 파빌리온 에너지를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양측 거래 가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테마섹은 지난 3월 말 파빌리온의 사업 가치를 36억 3000만 달러로 평가했다. 테마섹은 2013년에 파빌리온을 설립했다. 아시아에서 증가하는 LNG 수요를 공략하기 위해서였다.

파빌리온은 현재 싱가포르 전력 및 산업용 가스 수요의 3분의 1 이상을 LNG와 파이프라인 가스로 공급하고 있다. 테마섹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파빌리온은 올해 3월 기준 지난 1년 동안 세후 4억 3800만 달러의 이익을 기록했다. 이전 회계연도의 6억 6600만 달러 적자에서 흑자 전환했다.

셸은 LNG 분야에서의 선도적 위치를 강화하고 있다. 셸은 이미 연간 7000만 t 정도 되는 LNG를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 나아가 2030년까지 LNG 구매량을 2022년 수준 대비 20~30% 증가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셸은 “이번 거래로 글로벌 포트폴리오 중 LNG 부분이 상당히 강화될 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공급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에너지 기업들이 LNG 구매를 대폭 늘리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LNG 수요가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전쟁 이전인 2021년 무렵 러시아는 유럽 천연가스 소비량의 약 45%를 책임졌다. 2022년 개전 이후 그 비중은 15%로 크게 낮아졌다. 파이프라인 천연가스 공급량이 줄어들면서 유럽 각국은 선박으로 실어 나르는 LNG 수입을 크게 늘리는 등 대체재를 찾고 있다.

중국과 개발도상국들이 LNG 사용량을 늘리고 있는 점도 작용했다. 전 세계적으로 AI 데이터센터에 의한 전기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다른 화석연료에 비해 상대적으로 탄소 배출이 덜하다는 평가를 받는 천연가스 발전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중동 오일기업도 가세셸은 3월 발표한 ‘LNG 전망 보고서’에서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에서 석탄 발전에서 천연가스 발전으로의 전환이 가속됨에 따라 오는 2040년까지 전 세계 LNG 수요가 50%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LNG에 대한 연간 수요는 2040년 무렵엔 6억 2500만~6억8500만 t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중동의 대표 산유국들도 가스 베팅에 앞장서고 있다. 이번 파빌리온 인수전에서 셸에 밀려난 아람코는 작년 10월 미드오션 에너지가 추진하는 호주 LNG 프로젝트의 지분을 인수했다. 당시 사우디의 해외 LNG 산업에 대한 사상 첫 투자로 주목을 받았다.

아람코는 미국 텍사스에 기반을 둔 셈프라 인프라의 포트아서 LNG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연간 1350만 t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포트아서의 LNG 생산량 중 일부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아람코는 최근엔 미국 LNG 개발업체 넥스트디케이드와 향후 20년 동안 연간 120만 t에 달하는 LNG를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국영 석유기업 애드녹(ADNOC)은 지난달 넥스트디케이드의 텍사스 지역 LNG 생산시설 개발 계획인 리오그란데 프로젝트 1단계에 지분 11.7%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투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거래가 “UAE를 ‘글로벌 LNG 회사’로 자리매김하는 첫 단추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동 산유국들이 자국의 거대한 석유 매장지 관리에 집중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잇달아 해외 투자를 하며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리스타드에너지의 카우샬 라메시 LNG사업부 부사장은 “중동의 오일머니가 미국 민주당 행정부의 친환경 기조 등으로 LNG 투자에서 몸을 사리는 미국 월가의 자본을 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