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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는 에너지 분야 소식을 국가안보적 측면과 기후위기 관점에서 다룹니다.
Hyped Hydrogen-하(下)
석유·석탄을 대체할 미래 연료로 주목받아온 수소를 두고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발전단가가 높은 데다 관련 인프라스트럭처 구축이 더디자 수소에 실망하는 분석들이다. 수소경제에 거품(hype)이 꼈다는 지적까지 제기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수소는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는 인류가 꼭 활용해야 할 연료다. 친환경 전기의 저장 매개체이자 산업계 탈탄소화를 돕는 꿈의 자원이란 점에서다. 현재 기술력으로 충분히 단가가 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수소의 가능성 자체를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도 크다.
특히 풍력·조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활용이 늘어날수록 수소의 역할은 커질 수밖에 없다. 사용량이 들쭉날쭉한 전기를 물 분해에 활용(수소 생산)하면 에너지를 수소 형태로 저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전력망(그리드)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안정성’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비료 등 제조 과정에 암모니아를 만들기 위해 수소를 원료로 써야 하는 분야에서도 수소는 대체 불가하다. 대형 선박과 항공기의 경우에도 전기모터로 구동하는 기술은 아직 먼 얘기다.
수소 경제로의 진행이 예상보다 더디지만, 여전히 긍정적이라는 징후도 확인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형 친환경 스마트시티인 네옴시티의 수소 프로젝트는 2026년에 시작될 예정이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산업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존 그레이수소(화석연료에서 나오는 수소)의 42%를 그린수소(친환경 전기로 물을 분해해 만드는 수소)로 대체해야 한다는 신재생에너지 지침을 지난해 상반기 통과시켰다. 보조금(당근) 외에 채찍도 꺼내든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이에 대비하기 위한 몇 가지 굵직한 최종 투자 결정이 정유소와 화학 공장 등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의 BP-린겐 산업단지와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셸 200MW 전해조 설비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유럽 수소 은행의 첫 입찰에서 선정된 프로젝트의 보조금 수준이 ㎏당 0.5유로 미만으로 매우 낮았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의 마틴 쿠프만 수소책임자는 “이는 탄소 감축을 하지 못했을 때 받을 수 있는 페널티를 피하려는 구매 수요가 늘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수소의 역할론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요나탄 바르트 독일 에너지독립위원회 대변인은 “수소가 만능열쇠가 되길 바라다보면 지금 당장 수소를 사용할 수 있는 분야가 정작 탈탄소를 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수소 자원을 적절한 곳부터 분배해야 확실한 성장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작년 10월 가동을 시작한 독일 라이프치히 발전소는 '조금 특별한' 가스 화력 발전소다. 이곳엔 천연가스를 연소하다가 강판과 플라스틱 케이스 등에 약간의 조정만으로 100% 수소 가스를 연소할 수 있는 2개의 지멘스 에너지 터빈이 설치돼 있다. 이 프로젝트 운영사인 라이프치히 슈타트베르케는 "2026년까지 전 세계 처음으로 상업용 대규모 수소 발전을 이룰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독일 등 유럽에서 ‘수소 전환’ 대비용 가스 화력 발전소 설치가 늘고 있지만, 수소를 발전 분야에 쓰는 것은 낭비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렴한 무탄소 전력인 원자력 발전 등과의 경쟁에서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다.재생에너지로 기껏 수소를 만든 다음 다시 이를 발전용으로 활용하면 운송 등 과정에서 에너지 손실률이 70%에 이른다는 점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수소 발전은 차세대 기술로 각광받고 있는 수소 연료전지와도 다르다"고 지적한다.
결국 수소가 청정 에너지원으로 활용되기 위해선 운송 경로를 최대한 단축하면서 신재생에너지 생산지와 긴밀하게 연계된 사용처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나친 장밋빛 전망은 수소 프로젝트의 옥석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어 수소경제 도래를 늦출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수소 활용 효과를 극대화하는 사용처를 찾는 역량이 ‘수소경제 2.0’ 시대를 좌우할 것이라는 의미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