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트렌드] 'E'가 흔들릴 땐 'G'…거버넌스 투자로 눈 돌릴까

입력 2024-07-05 06:03
[한경ESG] 투자 트렌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고 있다. 고금리, 정치적 불안정, 전쟁 등 3대 악재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면서다. 최근 유럽의회 선거 결과가 우려를 키웠다. 우파가 다수당이 되면서 ESG 정책을 이끌어온 유럽에서 기세가 꺾이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더해진 탓이다. ESG 펀드를 이탈하는 투자자도 상당히 많다.

ESG 전체에 투자하는 것보다 테마 투자가 유리하다는 조언이 고개를 드는 이유다. 다만 친환경(E) 투자가 맥을 못 추는 사이 거버넌스(G) 투자자들은 소리 없이 단맛을 맛보고 있다. 존재감이 희미해진 ESG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거버넌스 관련 투자처를 살펴봤다.



美 신설 ESG 펀드 1분기에 2개뿐

지난 6월 유럽에서는 유럽의회 선거가 치러졌다. 다수당은 중도우파인 유럽국민당(EPP)이 비중을 유지(26%)했지만, 극우 정당 의석이 기존 대비 13석이나 늘었다. 반면 녹색당은 20석을 잃었다. 일각에서 유럽연합(EU)의 친환경 정책이 동력을 잃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초기 비용이 많이 드는 ESG 투자의 경우 정부 차원의 적극적 지원이 필수다. 중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수익 창출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거시경제 환경이나 정치적 반(反)ESG 세력의 힘이 강해지고 있어 ESG 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ESG 투자의 걸림돌은 유럽의회 선거 결과뿐 아니다. 유럽, 미국 등 주요국에서 하반기 금리인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고금리 기조는 여전히 ESG 투자를 가로막는 핵심 요소로 꼽힌다. 국제금융센터가 발간한 ‘최근 ESG 펀드투자 둔화 배경 및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ESG 펀드는 102억 달러가 순유출됐다. 같은 기간 글로벌 펀드 자금은 5080억 달러 증가했다. 투자자에게 ESG가 외면당한 셈이다. 펀드 유입액이 둔화하면서 신설되는 ESG 펀드 숫자도 줄어드는 추세다.

실제 올 1분기 글로벌 ESG 펀드는 97개 신설되는 데 그쳤다. ESG 투자가 시작된 이래 가장 작은 수치다. 특히 ‘투자 대국’ 미국에서 생겨난 신규 ESG 펀드는 2개에 불과했다. 국제금융센터는 “엔비디아 등 AI 관련 소수 대형 기술주를 중심으로 주식시장이 상승하면서 상대적으로 ESG 관련 종목의 투자수익률은 부진한 모습”이라며 “또 투자는 초기 설립 비용이 높은 편이라 정부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한데, 최근 거시 정치경제 환경은 ESG 투자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불과 몇 개월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 결과 역시 ESG 투자자에겐 초미의 관심사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을 제치고 재집권할 경우 그간 바이든 정부가 진행해온 환경정책 등이 상당 부분 중단되거나 후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의 당선은 ESG 투자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소지가 크다”고 평가했다.



주주환원 ETF 일평균 거래량 3000% 폭증

ESG의 대표 축인 ‘E’가 흔들리는 사이 발빠른 투자자들은 ‘G’에 눈을 돌리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올해 코스피 성과가 부진함에도 조용히 우상향하는 유형의 ETF
는 주주가치액티브ETF”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밸류업 지수와 ETF 상품이 아직 등장하지는 않았으나 PBR, ROE 등 주요 밸류업 지표 구성 요건을 감안하면 유사한 기업들이 편입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특히 트러스톤 주주가치액티브ETF의 경우 밸류업 기대감이 높아질 때마다 급등하고 있는데, 연초 이후 13.35%나 올랐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해당 상품에 대해 “기초체력이 우수하지만 낮은 주주환원율 등 이유로 저평가된 기업 중 ▲경영진 또는 대주주의 주주환원 개선 동기가 발생한 종목 ▲정부 정책 변화 노출도 등을 감안해 주주환원 확대 가능성이 높은 종목 ▲주주행동주의 타깃이 되었거나 될 가능성이 큰 종목을 발굴해 투자하는 상품”이라고 소개했다.

기초지수(코스피200)와의 1년 상관계수를 0.7 이상으로 관리하고 있는 액티브ETF이기도 하다. 주요 종목으로는 ▲현대차2우B ▲KB금융지주 ▲삼성카드 ▲SK ▲삼성전자 ▲NH투자증권 ▲현대엘리베이터 ▲한국알콜산업 등이 있다.

ACE 주주환원가치 ETF, BNK 주주가치액티브ETF도 유사한 종목이다. ACE 주주환원가치ETF의 경우 최근 6개월 새 10% 넘게 올랐다. ▲세아제강지주 ▲영원무역홀딩스 ▲더블유게임즈 ▲쿠쿠홀딩스 ▲SK가스를 포트폴리오 상단에 담고 있다. 상위 종목 상당수가 최근 3개년 꾸준히 시가배당률을 높인 기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에 따르면 ACE 주주환원가치주액티브ETF는 올 초부터 지난 5월 말까지 기록한 하루 평균 거래량과 거래대금이 전년 동기 대비 300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투운용 측은 “향후 주주환원 확대 여력이 있는 기업의 주가 상승이 지속될 경우 수혜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해진 결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거버넌스, 주주가치를 앞세운 투자는 국내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빛을 보고 있다. 이정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도 밸류업 정책을 내놓고 있다”며 “중국은 동아시아 3국 중 정부의 입김이 가장 큰 지역으로, 국영기업 비중이 높은 ETF 가운데 고배당 유형을 중국 밸류업 ETF로 분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 ETF가 이미 지수 대비 높은 초과 성과를 기록하
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연구원은 “연초 이후 항셍 고배당 ETF는 12.8%, 국유기업 배당 ETF는 8.5% 상승했다”며 “계속되는 중국 증시 부진을 감안하면 주목할 만한 성과”라고 부연 설명했다. 국유기업 배당 ETF의 경우 국유기업 비중이 80%인 상품으로, 중국판 밸류업 정책 대표 수혜 ETF로 꼽힌다. 개별 기업 대응이 어려운 중국 국유기업 개혁 테마에 대응 가능한 ETF인 셈이다.


박재원 한국경제신문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