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간 꾸준히 한국에 투자한 일본 기업이 있다. 총투자액이 5조원을 넘는다. ‘미래 첨단산업의 쌀’로 불리는 탄소섬유 복합재료 세계 1위(점유율 40%) 회사 도레이다. ‘깊이 탐구할수록 새로운 것이 나온다(深は新なり)’는 ‘극한 추구’ 정신으로 이 자리에 올랐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반발, 2019년 반도체 등 제조에 필요한 3개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했다. 이를 계기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자립을 위해 애쓰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 지난 18일 도쿄 도레이 본사에서 오야 미쓰오 사장을 만나 세계적 소재 기업으로 성장한 비결을 들었다.
▷해외 진출 역사가 깁니다.
“2026년이 창립 100주년입니다. 일본 제조업체 중에서는 상당히 일찍 해외에 진출했습니다. 1950년대 중반 홍콩에서 시작했죠. 단기적인 이익을 노리고 나간 것이 아니라 진출한 국가의 산업 진흥에 기여한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출발했습니다.”
▷1963년부터 한국에 투자했네요.
“한국 산업 발전을 위해 양국 국교 정상화 이전부터 투자했습니다. 코리아나일론(현 코오롱)에 기술을 이전하는 형태였습니다. 한국에 장기 투자하는 첫 번째 이유는 코오롱 삼성 등 대기업과의 오랜 신뢰 관계 때문입니다. 한국이 헤드쿼터가 돼 중국 인도네시아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점도 중요합니다. 한국에는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기업이 있어 우리의 첨단 소재를 공급할 수 있습니다.”
▷탄소섬유는 어떻게 개발했습니까.
“1961년 신도 아키오 박사의 탄소섬유 연구개발(R&D) 결과가 발표된 뒤 바로 라이선스를 받아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가볍고, 강하고, 단단한 ‘꿈의 소재’로 기존 금속 또는 철을 대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응용 분야도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소재라고 판단했습니다. ‘TORAYCA’라는 이름으로 상품 판매를 시작한 것은 10년이 지난 1971년입니다.”
▷어디에 공급했나요.
“사실 처음부터 ‘하늘을 날고 싶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이른바 ‘까마귀 프로젝트’입니다. 검은 탄소섬유로 만든 비행기를 하늘에 띄우자는 의미였습니다. 항공기용은 안전 등을 확보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 사이 다른 여러 용도로 개발해 사업을 유지하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가벼운 낚싯대, 골프 샤프트, 테니스 라켓 등입니다.”
▷항공기 사업 시작이 어려웠군요.
“1970년대 중반 처음으로 보잉 항공기의 2차 구조재(보조 날개 등)에, 1989년에는 보잉777의 1차 구조재(동체 등)에 채택됐습니다. 전면 채택은 2011년 처음 취항한 보잉787이죠. 개발부터 50년에 걸친 역사입니다.”
▷R&D 투자에 철학이 있습니까.
“인내심입니다. 50년에 걸쳐 비행기를 날렸다는 것이 그 예입니다. 끊임없이 이어 나가는 ‘초계속(超繼續)’으로 연구개발하는 것이지요. 단기적으로 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장기적인 기업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상품이라면 성공할 때까지 합니다.”
▷탄소섬유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가볍다는 점에서 우선 이산화탄소 감축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기압 변동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강도 높은 탄소섬유가 높은 고도에서도 객실 내 기압을 지상과 같이 유지합니다. 세 번째는 녹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객실 내 습도를 높게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UAM)에서도 강점이 발휘될 것입니다.”
▷우주 분야는 어떻습니까.
“탄소섬유는 온도 변화에도 강해 초고온·초저온의 우주 공간에서도 유리합니다. 우주복에서 활용도도 크죠. 우주에서는 물이 귀해 세탁할 수 없기 때문에 냄새가 배지 않는 우주복이 필요합니다. 우리 소재가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무취 우주복’에 채택된 배경입니다. 여러 나라가 달에 진출하면 물이 필요한데, 정수에 우리 수처리막 기술을 활용하는 것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사업 전망이 밝아보입니다.
“섬유는 사양산업이 아닙니다. 한국 일본 등은 인구가 줄어들고 있지만 세계 전체로는 증가해 수요가 확대되는 산업입니다. 한국을 헤드쿼터로 해서 중국 인도네시아 인도 등 수요가 느는 곳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입니다.”
▷한국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정치적으로 어수선한 때도 있었지만 한국에는 삼성 LG 현대차 등 대기업 최종 사용자가 있는 만큼 지속적인 관계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혼란할 때도 경제적인 관계는 변함없이 계속돼야 합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경제적 연결은 단단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한국 기업과의 협력의 장점은 무엇입니까.
“한국은 조립에 강합니다. 소재는 일본이 잘하죠. 우리의 세계 생산거점에서 바로 한국의 글로벌 생산기지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첨단 상품에 채택될 수 있도록 우리 역시 첨단 소재를 제공하는 선순환이 계속돼야 합니다. 도레이의 첨단 소재를 한국이 혁신적인 상품으로 탄생시켜 소비자가 행복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 나선형 구조를 만들고 싶습니다.”
▷미·중 무역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약 300개 계열사 중 200여 개가 해외에 있습니다. 수요가 있는 지역에서 제조해 그 지역에 바로 판매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가 핵심 전략입니다. 미국 중국 등에서 각각 공급망을 완성하는 형태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실적 전망은 어떻습니까.
“2024회계연도(2024년 4월~2025년 3월) 매출은 2조6200억엔(약 23조원), 순이익은 직전 연도의 3.7배인 810억엔이 될 전망입니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7배 수준인데,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낮은 탓입니다. 지난 5년간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대규모 설비투자를 했습니다. 그 사이 코로나19, 전쟁 등으로 가동률이 떨어졌습니다. 상품 가치를 더 높여 비싸게 팔 수 있도록 전략적 프라이싱을 추진 중입니다.”
▷투자자를 위한 밸류업도 하나요.
“2000억엔 규모 정책보유주(투자 목적이 아니라 기업 간 상호 보유한 우호 지분) 가운데 절반을 3년간 매각해 자사주를 매입하기로 했습니다. 여러 첨단소재가 언제 수익으로 연결될지 등에 대한 기업 설명도 강화할 것입니다.”
▷엔저 영향은 어떻습니까.
“일본은 의류 섬유의 90%를 수입합니다. 엔저 탓에 원가가 압도적으로 높아져 기업이 힘든 상황입니다. 물론 엔저 국면에선 해외에서 벌어들인 외화를 엔화로 바꿨을 때 일시적으로 수익이 증가하는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산업 전체가 상대적으로 위축됩니다. 장기적으로는 결코 좋지 않습니다.”
▷일본 거시경제 전망도 어둡습니다.
“과거 일본이 강했을 때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생산해 수출하는 구조였습니다. 지금은 GAFA(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의 성장에서 보듯 산업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는데, 일본의 접근 방식이 이를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일본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업마다 해외에 자산이 가득합니다. 이를 일본에 환류해 재투자하는 등 유용하게 사용할 방안을 검토해야 합니다. 도레이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일본 도레이는 탄소섬유 40% 점유…의약 사업 확장 속도일본 도레이는 1926년 레이온 실 생산 회사로 시작했다. ‘첨단재료가 첨단산업을 만든다’는 연구개발(R&D) 철학을 바탕으로 100년간 멈추지 않고 새로운 소재를 개발해 시장을 개척해왔다. 섬유에서 나아가 기능 화성품, 탄소섬유 복합재료, 환경 엔지니어링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넓혔다.
섬유사업은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아크릴 등 3대 합성섬유를 바탕으로 원사 및 원면, 직물, 봉제품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기능 화성품은 수지, 필름, 케미컬, 전자정보재료 등 네 가지 사업으로 구성돼 있다. 자동차, 정보기술(IT) 등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탄소섬유는 글로벌 시장 점유율 40%로 세계 1위다. 항공기부터 스포츠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 글로벌 수자원 문제 해결을 위한 수처리막 기술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엔 의약·의료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본사는 일본 도쿄다. 약 30개 나라에서 사업을 하고 있으며 자회사는 300여 곳에 달한다. 이 중 약 100곳은 일본, 200곳가량은 해외에 있다. 글로벌 임직원은 5만 명 수준이다. 올해 매출은 2조6200억엔(약 23조원), 영업이익은 1375억엔(약 1조2000억원)으로 전망된다. 각각 지난해보다 6.3%, 138.7% 늘어난 수준이다.
국내에선 1963년 코오롱에 나일론 제조 기술을 제공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한국 본사는 서울에 두고 경북 구미, 전북 군산, 울산 등에 생산설비를 운영하고 있다. 임직원은 4100명이며 작년 매출액은 3조2000억원이다. 구미 공장에 2025년까지 5000억원을 추가 투자할 계획이다.
■ 오야 미쓰오 사장 프로필
△1980년 도레이 입사
△2002년 장섬유 사업부장
△2009년 산업자재·의료소재사업부문장
△2014년 도레이인터내셔널 사장
△2016년 도레이 전무
△2020년 도레이 부사장
△2023년 6월 도레이 사장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