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현충원서 문전박대 당한 참전용사

입력 2024-06-23 17:28
수정 2024-06-24 00:10
1950년 6·25전쟁 때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60~70달러였다. 지금은 3만6000달러로 그때보다 500~600배가량 증가했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됐다. 세계가 놀라는 대한민국의 발전상이다.

놀라운 변화상은 자랑스러운 성과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도 적지 않다. ‘열악하다’고까지 부를 법한 좋지 않은 국민성이 남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대표적인 게 화합하지 못하고 다툰다는 것이다. 싸움을 이어가는 여당과 야당, 국회와 행정부의 모습을 보면 6·25전쟁 때와 비슷한 점이 적지 않다. 북한도 한민족으로 우리와 같은 품성을 지니고 있는 만큼, 남북한이 충돌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국민의 불안을 잘 다독이고, 남북관계를 지혜롭게 잘 운영해야 할 것이다.

부끄러운 국민성 중 하나로 국가에 헌신한 이들에 대한 고마움과 예우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지난 현충일에 윤석열 대통령이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저와 정부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영웅들에게 최고의 예우로 보답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많은 국민과 참전용사들이 깊은 감명을 받았다. 대통령의 발언에 ‘참전용사들이 홀대받던 모습이 이제는 바뀌겠구나’ 하는 기대도 했다.

6·25 참전용사인 나는 지난 38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계속 현충원을 방문했다. 나보다 먼저 간 군 동기들과 호국영령들에게 참배하고 헌화해왔다. 나이가 들다 보니 몸이 불편해 차를 타고 현충원을 찾았다. 올해도 예년처럼 현충일 오후에 차를 타고 현충원에 참배하러 갔는데 뜻밖에도 차량으론 들어갈 수 없었다. ‘최고의 예우로 보답하겠다’는 대통령 발언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현충원을 찾았건만, 문전박대당하듯 쫓겨나왔다. 6·25 참전용사로서 예우는커녕 뜻밖의 큰 봉변을 당한 것이다.

현충원은 정치인들의 보여주기식 무대로 전락할 장소가 아니다. 지도자의 발언에는 큰 무게가 있다. 오전 행사에서는 예우하겠다고 해놓고 오후에는 참전용사가 참배를 못 한 채 쫓겨나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지도자의 말이 신뢰를 얻을 수 있겠나. 물론 대통령이 시시콜콜한 실무를 알 수는 없을 것이다. 대통령께 누가 되지 않도록 보좌진이 지혜롭게 처리했어야 하는 문제다.

내가 고교 1학년 때 6·25전쟁이 일어났다. 탱크를 앞세우고 남침을 감행한 북한군은 개전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용산고로 등교하는 길에 북한군 탱크와 마주친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등골이 서늘하다. 그날 용산고 교정에서 북한군의 야크 전투기와 미군의 록히드 전투기가 치열한 공중전을 벌이는 것을 본 기억도 선명하다.

이후 낙동강변까지 밀렸던 국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고 서울을 탈환했다. 하지만 중공군의 참전으로 1951년 1월 서울을 다시 뺏겼고 오산까지 중공군이 내려오는 등 전황이 악화했다. 조국이 큰 위기에 처했을 때 나는 주저하지 않고 국군 장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중공군이 오산까지 닥쳤을 때인 1951년 1월 14일 장교를 육성하는 육군종합학교(당시 경쟁률 12 대 1)에 입교했다. 임관 후 1952년 육군수송부대 소속으로 속초에 배치돼 북송 선박 기밀 장교로 근무했다.

지금 남북 간에 충돌이 발생하면 남북이 공멸하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정부는 대북정책을 유연하고 지혜롭게 운영해 우리나라가 경제 대국으로 계속 번영토록 해야 한다. 국가에 봉사한 이를 존중하는 모습도 뿌리내렸으면 한다. 70여 년 전 나라를 지킨 이들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