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지원=대기업 특혜' 인식 바꿔야

입력 2024-06-20 18:47
수정 2024-06-21 07:11

“대만이 반도체 강국이 된 건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에 정부 지원을 밀어줬기 때문이다. 그 ‘낙수효과’로 반도체 생태계가 풍성해졌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기업이란 이유로 지원에 인색하다.”

정부의 반도체 지원 정책에 대해 “산업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생태계가 형성되는 반도체산업 특성을 외면한 채 중소기업 위주로 지원책을 짰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국가전략기술 설비투자 세액공제’다. 중소기업 공제율(25%)이 대기업과 중견기업(15%)보다 훨씬 높다. 산업은행이 반도체 기업에 빌려주는 정책자금 우대 금리도 중소·중견기업은 1.2%포인트인데 대기업은 0.8%포인트에 그친다. 각국 정부가 막대한 보조금을 앞세워 목돈을 투자할 수 있는 반도체 대기업들을 유혹하는 점을 감안할 때 중소기업에 포커스를 맞춘 우리 정부의 지원책은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527억달러)과 유럽연합(EU·430억유로), 일본(253억달러)이 막대한 보조금을 안긴 대상은 하나같이 반도체 대기업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국회는 반도체산업 지원이 ‘대기업 특혜’라는 프레임부터 바꿔야 한다”며 “중소기업 위주 지원책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은 자금력 전쟁으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공장 하나 짓는 데만 30조~40조원이 들고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한 대가 수천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런 점을 감안해 올 1월 “반도체 공장을 하나 세우면 설계·디자인·후공정 기업 그리고 연구개발(R&D) 시설까지 들어서게 되며 이에 따라 반도체 생태계가 조성돼 전후방 동반 투자 효과가 생긴다”고 했지만 정작 지난달 반도체산업 종합지원 프로그램을 발표할 때는 “반도체 지원금 26조원 중 70% 이상을 중소·중견기업에 지원한다”고 했다.

업계에선 대만 정부가 TSMC를 지원한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만 정부가 TSMC에 ‘올인’한 덕분에 미디어텍(반도체 설계), ASE(후공정) 등 세계적 기업도 생겨났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