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감쪽같이 속았다…'미모의 그녀' 소름 돋는 정체

입력 2024-06-19 17:27
수정 2024-06-19 17:40

“대화가 잘 통하는 ‘온라인 소울 메이트’라고 생각했었는데…보이스 피싱 조직일 줄 몰랐습니다.”

20대 대학생 A씨(남성)는 지난달 말 인스타그램을 통해 한 여성을 알게 됐다. SNS 계정을 모두에게 볼 수 있게 해둔 그녀는 프로필 사진만 봐도 딱 봐도 연예인 수준의 뛰어난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그녀는 프랑스, 미국, 스페인 등 해외 유명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행복한 일상을 사진으로 찍어 주기적으로 게시했다. 명품 의류를 치장한 그녀에게 호감이 생긴 A씨는 그녀를 알게 된 이후 매일 같이 온라인 대화를 주고받았다.

“내가 누나니까 말 편하게 할게~” “난 지금 상하이야. 넌 서울이니?” “XX는 대학생이야?” 등 수시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대화를 이어가던 중, 미모의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고민을 털어놨다.

“좀…복잡한 일인데”라고 운을 띄운 그녀는 “한 사이트에 쌓아둔 포인트를 빨리 환전해야 하는데, 내가 해외라 계좌 거래가 어렵다. 대신 받아줄 수 있을까”라고 부탁했다.

한국에 아는 사람이 없어 A씨만이 그녀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A씨는 별것 아니라 생각했고 미모의 여성이 알려준 사이트에 가입했다. 이후 포인트를 대신 수령해 현금으로 환전하려는 절차를 가졌다.


하지만 해당 사이트는 가짜 피싱 사이트였다. 이 사이트 안내센터는 A씨에게 “포인트를 돈으로 환전하려면 VIP 등급만 가능하다. A는 신생 회원이기 때문에 포인트가 아무리 많아도 돈으로 바꿀 수가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VIP 등급이 되려면 50만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50만원을 입금한 A씨는 곧바로 VIP 등급이 됐지만 그래도 환전할 수 없었다. 고객센터 측은 환전을 요구한 A씨에게 갑자기 ‘환전 권한이 필요해서 추가금 30만원을 내야 한다’고 다른 요구를 했다. 이후 고객센터 측은 이런 방법으로 6차례에 걸쳐 각종 비용을 요구했고 A씨는 총 1480만원을 입금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라 A씨는 자신이 온라인 사기에 당했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입금한 계좌도 ‘더치트’에 사기 거래 피해가 접수된 대포통장인 사실도 뒤늦게 확인했다. A씨는 뒤늦게 온라인 대화를 했던 2주 동안 그녀가 전화통화를 피해왔다는 걸 깨닫고, 모든 게 사기란 사실을 눈치챘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A씨의 범죄 사례를 ‘로맨스스캠’(이성적 관심을 가장해 피해자의 관심을 얻고 관계를 가진 뒤 호의를 이용한 신용 사기의 일종) 형태로 보고 수사를 하고있다고 19일 밝혔다. 그러면서 경찰은 기존의 로맨스스캠보다 정교한 수법을 사용한 보이스피싱 조직이 활개를 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서울 마포경찰서 관계자는 “현재 수사중인 사안이라 자세한 내용을 밝힐순 없다”고 말했다.

기존의 로맨스스캠의 경우 아프리카 쪽 영미권 국가 내 범죄집단이 포털사이트 번역기를 통해 한국어 대화를 나누며 범죄를 저질렀었다. 번역 자체가 어색하고 문법이 상당수 틀리다 보니 이를 접한 한국 사람들은 쉽게 범죄란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나 A씨 사례는 실제 한국인이 벌인 것으로 추정된다. A씨는 “요즘 대학생들이 온라인을 통해 친구를 맺는 것이 흔하다 보니 큰 경계를 하지 않았었다”며 “인스타그램 계정 관리도 잘 되어있어 사기라 생각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범죄 조직이 여성 사진을 도용한 것으로 보고 해당 사진의 여성 역시 사기 범죄의 피해자라고 추정하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조직은 로맨스스캠을 꺼렸지만 최근 들어 이 분야까지 범죄 기법을 넓히고 있다”며 “온라인에서 돈을 요구하거나 이상한 사이트로 접속을 유도하는 경우 대다수 사기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