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급하게 차선을 변경하려는 옆 시내버스에 깜짝 놀란 김 모씨(62)가 클랙슨을 눌렀다. 강북구 미아동에서 강남 역삼동으로 으로 출·퇴근하는 그는 2~3개 차선을 건너뛰는 파란 시내버스들을 피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게 일상이다. 김씨는 "버스 기사들이 승객을 태우기 위해 정류장으로 가야 하는 건 알고 있지만 쌍깜빡이를 킨 직후에 앞으로 끼어드는 건 너무 운전 매너에 어긋난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김씨와 같이 시내버스 난폭운전에 불편을 겪는 서울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내버스가 도로 안전을 해친다는 것. 버스기사들도 할 말이 있다. 정류장 간 짧은 배차간격, 휴식 시간 부족과 같은 문제들이 시내버스 기사들을 난폭운전으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다.
성과급 압박 속 늘어난 난폭운전 21일 서울시 버스정책과에 따르면 서울시에 접수된 시내버스 난폭운전 민원은 2022년 538건에서 작년 580건으로 7.8% 증가했다. 과속, 급제동 등 시내버스의 고질적인 '난폭운전'으로 승객 불만이 지속되고 있다.
난폭운전에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지만 버스 업계는 주어진 시간 내에 종점까지 가야 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자체가 버스를 운용하는 운수회사를 평가하는 기준 중 하나가 ‘정시성’이기 때문이다. 정시성은 버스가 예정된 시간에 맞춰 노선의 각 정류장과 종점까지 도달하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서울시는 운수회사들을 총 1000점으로 나눠 평가해 순위별로 성과 이윤 230억원가량을 상위 40개 사에 순위별로 차등 지급한다. 이 중 배차 정시성의 비중은 90점이지만, 회사 간 점수 차이가 1~2점 내외라 운수회사들은 버스 기사들에게 '정시성'을 지키라고 압박 할 수밖에 없다.
출퇴근 시간 배차간격 '비현실적' 운수회사 소속 버스 기사들은 정류장 간 8분 내외로 설정된 빡빡한 배차간격을 맞추기 힘들다고 항변한다. 특히 교통체증이 심한 출·퇴근 시간 강남·명동 등 주요 노선의 경우 정류장 간 배차간격을 현실적으로 맞추기 어려워 난폭운전이 반복된다는 입장이다.
서울 시내 버스 기사 김 모씨(50)는 "강남이나 명동에서는 버스들이 전용 차선에서 꼬리를 물어 앞뒤로 긴 버스 줄이 만들어져 있는데 줄 앞쪽에 버스 입장에서는 뒤 버스의 배차간격을 위해서라도 더 빨리 가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짧은 휴식 시간도 버스 기사들의 난폭운전을 유발하는 원인이다. 배차 간격을 지켜야만 30분 내외에 짧은 휴식 시간이라도 확보할 수 있어 무리한 운전을 해서라도 일찍 종점에 도착하려고 하는 것이다. 교통상황 때문에 종점에 늦게 도착하는 일부 기사들은 3~4시간 동안 버스를 운전하고 휴식 없이 예정된 운행을 바로 진행하기도 한다.
버스 업계 관계자는 “정시에 도착하기 어려운 출퇴근 시간에도 버스 기사들이 종점에 시간 맞춰 도착하기 위해 위험 운전이 계속되고 있다”며 “승객 안전을 위해서라도 버스 기사의 휴식 시간을 늘리고 정시성 관련 평가 규정은 완화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