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내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대대적으로 인력을 보강했다. 경찰의 경영책임자인 청장 역시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호하다고 평가받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전방위적으로 확대 적용되는 가운데 경찰청과 같은 사정기관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20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전문인력을 지난해 16명에서 올해 46명으로 대폭 늘렸다. 본청에 2명, 시도경찰청에 34명, 부속기관에는 10명을 선임했다. 안전관리자와 보건관리자 23명씩이다.
안전보건 전문인력이란 고용노동부에서 지정된 전문 업체 소속의 안전·보건 관리자를 말한다. 중대재해법이 인용하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은 전문인력을 선임해 관련 지도와 조언을 정기적으로 받아야 한다. 이들은 경찰 직원들과 협업해 매월 경찰 시설에 대한 위험성 평가 및 교육 계획 수립을 돕고 의무사항 준수를 돕는다. ○ 전문인력 2배 넘게 확충
경찰은 현행법상 의무 안전보건 전문인력 수를 확보한 상태지만, 올해에는 의무가 아닌 관서에까지 전문인력을 확충했다. 중대재해법에서 처벌은 사업주나 경영자가 안전관리체계를 적절히 마련했는지 여부에서 갈리기 때문이다.
산안법은 공공행정에 한해서는 안전관리체계 마련 의무를 일부 면제한다. 경찰, 군인, 소방 등 공공성이 요구되는 업무의 특성상 일반 산업군처럼 법을 적용하기 어려워서다. 다만 경찰이 직접 고용한 현업업무종사자나 일반 근로자들은 산안법을 그대로 적용받는다. 현업업무종사자란 시설·조리·미화 등 경찰 업무를 지원하는 기간제 혹은 계약직 직원들을 말한다.
현업종사자를 위한 체계 마련이 경찰 입장에서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해 11월 기준 전국 시·도청 및 경찰 부속기관의 현업종사자는 2747명에 달한다. 이 외 경찰병원 소속 일반 근로자도 641명에 이른다. 일반 경찰과는 달리 크고 작은 산업재해에 노출된 만큼 세심한 관리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현행법상 경찰청은 현업종사자 50인 이상 관서에 전문인력을 배치해야 한다. 이에 따라 경찰은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2022년 이후부터 본청·서울청·부산청·경기남부·충북경찰청, 중앙경찰학교, 경찰인재개발원, 경찰병원 등 8개 관서에만 전문인력을 운영해왔다.
올해부터는 현업종사자가 50인 미만이더라도 전문인력이 선임됐다. 경찰대학, 경기북부청, 전북·전남청, 경북·경남청, 경찰수사연수원 등 23개 관서로 대상을 넓혔다. 안전·보건 분야는 전문성이 필요한 특수 분야인 만큼 일선 행정력으로는 중대재해 요소를 점검하기 어렵다는 현장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다.
경찰 관계자는 "중대재해 업무는 준수 의무가 많아 현장에서 막막하다는 반응이 많았다"며 "내년부터는 전국 일선 경찰서까지도 전문인력을 늘릴 계획"이라 밝혔다. ○ 산재 느는데 법은 모호... "선제 대응 차원"
경찰은 경찰 기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중대재해를 사전에 완전히 차단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경찰청의 노후화된 간판이 떨어져 사람이 맞아 죽거나(중대시민재해) 조리 분야 근로자가 주방 기기를 다루다 사망한 경우(중대산업재해) 경찰청장도 중대재해법에 의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아직까지 경찰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사례는 없지만, 산업재해 사례는 오름세다.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는 2021년 8건에서 지난해 20건으로 올랐다. 작년 기준 미화에서 14건, 시설에서 5건, 조리에서 1건이 발생했다. 재해 종류 별로는 넘어짐이 8건으로 가장 많았고, 끼임(4건)이나 베임·맞음(2건), 화학물질(1건) 등이 뒤를 이었다.
중대재해법의 조항이 모호한 상황에서 법의 적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도 경찰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중대재해법은 올 1월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확대 적용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등은 중대재해법의 위헌을 주장하며 헌법소원심판을 제기한 바 있다.
경찰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의 의무사항이 광범위한 만큼 일선에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다"며 "안전한 근무 환경 조성을 위해 장비 지원도 아끼지 않을 예정"이라 설명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