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년 만에 북한을 방문한다. 북한 당국은 평양 국제공항과 백화원 영빈관 등에서 푸틴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한·미·일 3국은 푸틴 대통령의 방북이 북·러 간 군사협력을 심화하는 결과를 초래해선 안 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정책 공조에 착수했다. 한국 정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만남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준수해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북한 비핵화 및 한반도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러시아의 건설적 역할을 촉구하고 있다.
2000년 3월 푸틴 대통령 권한대행은 생애 첫 선거에서 50% 조금 넘는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해 7월 푸틴 대통령은 구소련 및 러시아연방 정상 최초로 북한을 방문했다. 하지만 소련 붕괴 이후 만성적인 경제난과 사회 혼란 등 러시아 내부 사정으로 정치 초보 푸틴 대통령의 북한 방문은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그로부터 24년 뒤 푸틴 대통령은 올해 3월 치러진 다섯 번째 대선에서 87.28%의 역대급 득표율로 연임에 성공하며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서기장의 집권 기록을 갈아치웠다. 여기에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국제사회의 트러블 메이커로 등극했다. 더 강력해진 푸틴 대통령이 북·러 전투기 편대의 호위를 받으며 평양을 방문하는 모습은 한반도를 넘어 국제사회의 긴장을 조성하기에 충분하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 등 북한 주요 인사가 러시아 대표단을 영접하기 위해 평양 공항에 대거 집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와 ‘미래 지향적 백년대계 구축’을 천명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을 직접 맞이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 주민의 열렬한 환영 속에 평양 시내로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의 방북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반드시 잡아야 할 일생일대의 우량주다.
북·러 정상은 한반도 및 역내 안보 현안, 우주협력, 경제협력, 첨단기술, 사이버 안보 등 광범위한 의제를 논의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한·러 우주협력을 모방한 북·러 우주기술협력 협정 체결 가능성이 크다. 북·러는 우주 공간의 평화적 이용을 명분으로 우주 공동탐사, 북한 우주 발사장 시설 현대화 등 유인 우주기술 협력과 위성 자력 발사기술 협력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1961년 체결된 조·소 동맹 조약 복원 가능성도 거론된다. 조·소 동맹 조약은 제6공화국 출범 이후 북방정책 성과에 힘입어 1996년 자동 폐기됐다. 푸틴 대통령이 소비에트 붉은 군대가 한반도 해방과 북한 정권 형성에 기여했다는 역사 인식을 계승하고 있는 만큼 북한 체제 보장을 위한 러시아의 역할이 제도화될 공산이 크다. 다만, 자동 개입을 규정하는 동맹 조약의 즉각적인 복원 대신 유사시 북한 체제 보장을 위한 북·러 양국의 즉각적이고 긴밀한 협의와 협력, 이를 실현하기 위한 안보협의그룹 창설 내용이 공동성명에 반영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을 앞두고 한 세계 16개 통신사 인터뷰에서 한국은 분쟁 지역(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이에 대해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에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지 말라는 경고성 메시지와 함께 한·러 관계의 점진적 복원에 대한 기대와 의지가 실린 이중적 의도를 담고 있다. 러시아 당국이 윤석열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 마무리 직후 푸틴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한국을 고려한 흔적도 보인다. 푸틴 대통령의 방북이 우리에겐 풀기 쉽지 않은 고차방정식이다.
푸틴 대통령이 24년 만에 평양을 방문하는 시간 서울에선 9년 만에 한·중 ‘2+2’ 외교·안보 대화가 열린다. 한·러 관계의 안정적 관리 상황을 지혜롭게 발전시켜 북·러 관계 긴밀화를 지연 및 억제하고, 한·중 관계 개선을 통해 북한 비핵화 등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적극 견인해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복잡한 셈법이 각축하고 있다. 국민의 안위와 국익 수호를 위해 제22대 국회의 초당적 협력은 물론 범정부적 역량 결집이 중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