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물질 연구 잇단 성과…자율차 레이더용 발열필름, 구조광 센서에 적용

입력 2024-06-17 15:53
수정 2024-06-17 15:54
자동차 운전 중 내·외부 온도 차이 등으로 유리창에 김이나 성에가 낄 땐 히터나 환풍기를 틀어 제거한다. 무인 자율주행차나 높은 곳을 비행하는 무인 드론 등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오작동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연구재단은 경희대학교 응용물리학과 김선경 교수 연구팀이 자율주행차 레이더용 발열 필름을 메타물질로 제작하고 제빙 성능을 입증했다고 17일 밝혔다. 메타물질은 음굴절 등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특성을 갖도록 인위적으로 설계한 신소재를 말한다.

자율주행차의 눈 역할을 하는 센서는 크게 레이더와 라이다로 나뉜다. 자율주행차 레이더는 마이크로파를 발사해 목표물에 맞고 되돌아오는 데이터를 분석해 속도와 방향, 거리 등 정보를 파악한다. 레이더에 투명 발열 필름을 붙여 결빙 또는 서리를 빠르게 제거하는 기술 수요가 최근 산업계에서 높아졌다.

연구팀은 일명 ‘금속 메타물질 필름’을 개발했다. 0.7 mm 두께의 유리 기판 위에 300 nm(나노미터) 두께의 구리 필름을 코팅한 뒤 이 필름에 반도체 공정으로 특정 문양을 새기는 방법을 썼다.

이 필름의 실용적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영하 20도 환경에서 제빙 실험을 했다. 3V 전압을 줬을 때 센서를 덮는 필름 커버 온도가 180도까지 상승하면서 10초 안에 결빙이 완전히 제거되는 것을 확인했다. 일반적인 자동차 주행 환경에서 차량 정격 전압인 12V를 인가하면 1초 내 결빙이 제거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김선경 교수는 “본 연구에서 개발한 메타 필름이 상용화되기 위해선 곡면 구조 적용이 가능해야 한다”며 “주어진 곡면에 맞게 메타물질의 구조 변수를 최적화하는 후속 연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구를 이끈 김 교수는 KAIST 물리학과에서 학부와 석·박사를 마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했다. 이후 LG이노텍 책임연구원, LG전자 선임연구원 등을 지내고 2013년부터 경희대에서 재직하고 있다. 이번 연구성과를 담은 논문은 세계 3대 학술지 네이처의 자매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실렸다.

한국연구재단은 또 다른 메타물질 연구 성과도 지원했다. 재단은 포스텍 백승환 컴퓨터공학과 교수와 같은 대학 기계공학과 노준석 교수 연구팀이 360도 전방위로 환경을 인식할 수 있는 구조광(빛의 패턴을 만들어 투사하는 것) 센서를 메타물질로 개발했다고 밝혔다. 인공지능(AI) 로봇, 자율주행차 등이 주변 환경을 인식할 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구조광은 라이다, 홀로그램,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에서 사용된다.

연구팀은 나노 광학 소자로 이뤄진 메타물질의 위상 변조도를 학습할 수 있는 ‘메타 표면 AI 설계법’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빛을 동시에 투과·반사해 360도 전 방향으로 원하는 구조광을 발사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 관계자는 “AI와 컴퓨터 비전, 나노 기술 등을 결합한 다학제적 연구 성과”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우수신진연구 사업과 중견연구 사업 지원을 동시에 받았다. 우수신진연구 사업 주체인 백 교수는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MS) 등에서 일했다. 중견연구 사업자인 노 교수는 메타물질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다. 미 UC버클리 기계공학 박사 시절부터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내 왔다. 지난해엔 노벨 물리학상, 화학상 수상자를 데이터 기반으로 예측하는 과학기술 정보분석 기업 클래리베이트로부터 ‘논문이 가장 많이 인용된(Highly Cited)연구자’로 선정됐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