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명
지난 5일 일본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지난해 일본의 합계출산율이다. 도쿄는 0.99명으로, ‘1명’ 선마저 무너졌다. 출산율이 8년 연속 하락, 역대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일본은 충격에 빠졌다.
한국은 일본보다 훨씬 심각하다. 지난해 출산율은 0.72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 정부는 2006년부터 2022년까지 저출산 대책으로 332조원을 쏟아부었지만, 상황은 나빠지고 있다”고 전했다.
두 나라 모두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는 점은 같지만, 그 배경은 다르다는 것이 일본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핵심은 ‘한국은 안 낳고, 일본은 못 낳는다’는 것이다. 그 차이엔 ‘젠더 이슈’가 있다.
두 나라에 대한 전망도 엇갈린다. 한국은 급격한 출산율 하락 뒤 반등 가능성이 있지만, 일본은 계속해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한·일 저출산 문제를 연구하는 사사노 미사에 이바라키대 가족사회학 교수의 분석이다. 사사노 교수는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에서 15년 동안 살며 두 나라를 비교했다. ○“한국은 급격한 고학력화에 가치관 변화”15일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사사노 교수는 한국의 저출산 요인으로 취업난, 교육비, 집값 등보다 ‘가치관 변화’에 주목했다. 그는 “저출산 요인은 복합적이지만,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는 가치관”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압축적 고학력화’로 젊은 여성의 가치관이 크게 바뀌었다는 분석이다. 사사노 교수는 “어머니 세대가 자라던 시절의 한국은 가난했고, 당시 여성들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일하는 등 가족을 부양했다”며 “그런 어머니 세대는 자기 딸은 다른 삶을 살기를 바라며 딸도 아들과 마찬가지로 교육에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한국은 어머니 세대와 딸 세대의 고등교육 이수자 비율이 60%포인트나 차이 나게 됐다는 분석이다. 그는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은 세 배 빠른 속도로 고학력화를 달성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급격한 고학력화에 따라 성별 역할을 나누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는 진단이다. 사사노 교수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여성만 가정을 책임지는 것은 불평등하다는 생각이 확산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지금의 30대 여성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세대 간 가치관 차이가 커지면서 결혼에 부정적인 시각마저 확산했다고 분석했다. 사사노 교수는 “한국의 어머니 세대가 딸에게 ‘전문직을 가져라, 대기업에 가라’는 것까진 좋았다. 그러나 며느리에게는 내조를 요구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딸 세대가 결혼에 부정적인 이유 중 하나라는 분석이다. ○“한국 반등 가능, 일본은 계속 떨어질 것”일본의 경우 결혼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21년 최신 조사에서도 ‘언젠가 결혼할 생각’이라는 응답이 일본은 80%를 넘었다. 일본이 한국처럼 극단적으로 출산율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렇지만 한국보다 전망이 어둡다는 게 사사노 교수의 관측이다. 그는 “한국은 양성평등으로 가는 과정이 빠르다”며 “앞으로 세대교체가 진행되면 세대 간, 남녀 간 갈등도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30년 정도 걸릴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사이 출산율은 크게 줄어들겠지만, 어느 순간 회복 조짐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일본은 한국 같은 남녀평등으로 가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해서 출산율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그는 “일본은 ‘가족이 깨진다’며 선택적 부부 별성조차 허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업주부를 세제상 우대해 일하는 여성의 의욕을 뺏는 것도 선진국 중 일본뿐이다.
일본의 저출산 대책을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 사사노 교수의 주문이다. 그는 “한국은 결혼하지 않으려는 젊은이가 늘고 있는 반면, 일본은 결혼하고 싶어도 못 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며 “청년들이 결혼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