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수도권 소형 건설사 오피스텔 공사 현장에서 직원 한 명이 사망한 중대재해 사건과 관련해 건설사 대표가 현장소장보다도 높은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형량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이 건설사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제대로 구축·이행하지 않은 데 주목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올해 1월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된 가운데 경영계는 중소기업이 이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일부 법적 의무를 덜어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오피스텔 현장서 중대재해…건설사 대표 '징역형'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창원지법 마산지원 김남일 부장판사는 지난달 2일 중대재해법상 산업재해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운건설 대표 A씨에게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와 함께 재판에 넘겨졌던 현장소장 B씨는 업무상과실치사·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상운건설 법인은 양벌규정에 따라 벌금 8000만원을 물게 됐다.
사고는 지난해 5월 경남 창원 마산회원구의 한 오피스텔 신축 공사 현장에서 발생했다. 당시 공사 현장 5~6층 계단 사이에서 콘크리트벽 표면을 매끈하게 마무리하는 견출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15m 아래 1층으로 떨어져 숨졌다.
수사기관은 A씨가 중대재해법에 규정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행'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봤다. 중대재해법은 일정 규모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사망 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고 예방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는 법이다. 2022년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 건설업의 경우 공사 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 우선 적용됐다. 5~49인 사업장에는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올해 1월부터 시행됐다.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이행하려면 유해·위험 요인을 확인해 개선하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책임자가 안전 관리 업무를 수행했는지 평가하는 기준을 둬야 하고 안전관리자를 적절히 배치할 뿐 아니라 중대재해 발생에 대응할 매뉴얼도 갖춰야 한다. 사업장 안전 관련 사항에 대해 종사자들 의견을 듣는 절차를 마련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 외에도 안전·보건 관련 목표와 경영방침을 설정하고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시설·장비·예산 등을 갖춰놔야 한다.
수사기관에 따르면 A씨는 추락 위험이 있었는데도 이를 확인해 개선하는 업무 절차를 마련하지 않았다고 봤다. 이 때문에 안전대가 지급되지 않았고 방호조치도 미흡한 상태로 방치됐다는 것. 또 안전책임자가 안전 관리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지 평가하는 기준을 두지 않아 B씨가 안전사고 방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종사자 의견 청취 절차도, 매뉴얼도 갖추지 않았다.
상운건설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과거 18차례에 걸쳐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 A씨에 대해 징역형이 선고된 이유다. 법원은 다만 A씨가 범행을 반성하고 숨진 근로자 유족과 합의한 사정 등을 토대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法, 중대재해 판결 17건 모두 유죄…주로 '집유'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집계에 따르면 법원에선 그간 총 17건의 중대재해법 위반 사건을 다룬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17건 모두 유죄로 결론 냈다. 형량은 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로 정해졌다. 수사기관이 회사 대표나 그룹 회장을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긴 사례만 지난 5월 기준 총 51건에 이른다.
경총은 "중대재해 발생 전력이 없고 최소한의 업무 절차를 마련한 경우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수차례 안전조치 의무 위반으로 처벌을 받았거나 현장의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 실형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이날 기준 총 2건이다. 사고가 반복된 한국제강의 대표는 지난해 12월 징역 1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자동차 부품업체 엠텍 대표는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 대표는 지난 4월 항소했다.
경영계에선 올해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법이 적용되는 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 지난달 경총 자체 조사 결과 50인 미만 기업 10곳 중 8곳(77%)이 중대재해법 준비를 완료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난 데다 법상 주어진 의무가 중소기업이 이행하기엔 무리가 있어서다.
경총은 지난 12일 고용노동부에 중대재해법령 개정을 건의했다. 50인 미만 기업은 안전 전담조직 설치나 관련 예산 편성·집행, 매뉴얼 마련, 의무 이행 여부 반기 1회 점검 의무 등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것.
상운건설은 현재 직원 수가 14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고 당시 상운건설이 도급받은 공사금액이 107억원이란 점이 인정돼 중대재해법이 적용됐다.
류기정 경총 총괄전무는 "중처법은 제정 당시부터 위헌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현재 헌법소원 청구까지 진행됐다"며 "사업장 우려 해소와 중소·영세기업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정부가 시행령부터라도 조속히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