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문 열어줬다가…" 순식간에 돈 뜯긴 70대 노인 '눈물' [이슈+]

입력 2024-06-14 12:14
수정 2024-06-14 16:34

“자식들한테 미안해서 어쩐답니까. 괜히 문을 열어줬다가…”(70대 임모 씨)

지난 4일 오후 경기 수원에 사는 임 씨는 'A 난방관리'의 기사로부터 “가스 점검을 나왔다”는 말에 현관문을 열어줬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의무 점검을 위해 방문했다"고 임씨를 속인 뒤 보일러 시설을 과잉 점검해 수리비를 170만원을 청구했다. 임 씨의 자녀는 “이날 연립 주택 내 다섯 가구가 똑같은 사기를 당해 최소 1000만원가량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노인들을 대상으로 보일러를 점검해주겠다며 집에 방문한 뒤 과잉 점검으로 돈을 챙겨 달아나는 사례가 최근 다시 늘고 있다. 한국보일러설비협회 관계자는 “2010년대 초에 기승을 부리던 ‘보일러 점검’ 사기 수법이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기 업체들은 도시가스나 지역난방이 공급되지 않는 개별 난방 아파트, 빌라 등을 대상으로 마치 공식적인 관리업체인 냥 방문한 뒤 불필요한 수리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A 난방관리', 'B 시설관리’와 같이 공기업으로 착각할 만한 유사 상호를 내세웠다. 하지만 이들은 실제론 협회에 등록조차 되지 않은 업체다. 한국보일러설비협회 관계자는 “전문건설업을 등록하지 않은 채로 보일러 점검을 하는 것은 현행법상 불법인데 이들 업체는 정황상 관련 업종으로도 등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해당 업체는 2010년대 초부터 'D 난방관리'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사기 행각을 벌여왔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업체의 이름만 조금씩 변경됐을 뿐 명함, 명세서 양식과 업체 주소지 등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피해자 이모 씨는 이를 두고 “잘 모르는 노인을 상대로 돈을 뜯어내는 수법이 마치 보이스 피싱과도 같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2022년 5월 경기 수원 일대에서 보일러 의무 점검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가구에 방문한 뒤, “보일러 누수가 있으니 수리하겠다”면서 200만원을 과잉 청구해 공분을 산 바 있다. 수리비 내용엔 △부품 교체 비용 △부식방지 처리비용 △AS 비용 등이 포함됐다. 특히 부식방지제 10여통을 사용한 뒤 청구한 비용만 100만원이 넘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배관 부식방지제는 각종 금속 재질 배관 전용 물품인데,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의 집 배관은 플라스틱 소재”라면서 "이들 업체가 비용을 높이기 위해 불필요한 용품을 사용한 뒤 요금을 청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해당 업체에 대한 별다른 규제가 이뤄지지 않아 피해가 반복된단 지적도 나온다. 피해자들이 경찰에 고소를 위해 찾아도 돌아오는 답은 ‘강제로 교체한 게 아니기 때문에 사기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말뿐이었다고 한다.

한국보일러설비협회 관계자는 “주로 나이 든 노인들이 혼자 집에 있는 점을 노려 이들이 같은 방식으로 사기를 쳐도 별다른 대책이 없어 똑같이 당하는 사람이 계속 나오는 것”이라며 “보일러 점검 업체가 정상적으로 등록된 업체인지, 제대로 된 자격을 갖췄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