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 충분히 유지…정책기조 전환은 천천히 서두를 것"

입력 2024-06-12 18:44
수정 2024-06-13 01:52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사진)는 12일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란 확신이 들 때까지 현재의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한은 창립 74주년을 맞은 이날 기념사에서 “섣부른 통화완화 기조로의 선회 이후 인플레이션이 재차 불안해지면 그때 감수해야 할 정책 비용은 훨씬 더 클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 경제에 대해선 “우리 경제의 회복세가 당초 우려보다는 나아진 모습을 보여 다행스럽다”면서도 “수출과 내수의 회복세 차이가 완연하다”고 진단했다. 물가를 두고는 “(상승률) 둔화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예상보다 양호한 성장세, 주요국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에 따른 환율 변동성 확대 등으로 물가의 상방 위험이 커졌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통화정책 전환을 신중하게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이 총재는 “너무 늦게 정책 기조를 전환하면 내수 회복세 약화와 더불어 연체율 상승세 지속 등으로 인한 시장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며 “반대로 너무 일찍 전환하면 물가상승률 둔화 속도가 늦어지고 환율 변동성과 가계부채 증가세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마지막 구간에 접어든 지금 이런 상충 관계를 고려한 섬세하고 균형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며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라는 아우구스투스 로마 황제의 정책 결정 원칙을 전했다.

이 총재는 구조 개혁을 위해 한은이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저출생·고령화, 지역불균형과 수도권 집중, 연금 고갈과 노인 빈곤, 교육 문제, 소득·자산 불평등, 노동시장 이중 구조 등 그간 심화해온 여러 구조적 문제 앞에서 우리의 연구 영역을 통화정책 테두리 안에만 묶어둘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직원들에겐 “때로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똑똑한 이단아’가 돼 한은의 혁신을 이끌어주길 바란다”며 “‘한은사(寺)’에서 벗어나 ‘시끄러운 한은’으로 거듭나자는 것이 취임 때부터 밝힌 포부”라고 덧붙였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