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가 내년 가동을 목표로 서부 메디나주에 짓고 있는 세계 최대 정유·석유화학 통합 공장(COTC)은 글로벌 석유화학 시장을 뒤흔들 ‘게임체인저’로 불린다. 원유에서 나프타를 추출한 뒤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 등 기초유분을 생산하는 기존 공정과 달리 원유에서 곧바로 기초유분을 제조하는 방식이어서다. 게다가 석유를 뽑아낸 바로 그 자리에서 제품을 만들어내니 운송료와 관세도 없다. 그 덕분에 이 공장의 생산단가는 한국의 3분의 1(에틸렌 기준)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배진영 성균관대 고분자공학과 교수는 “중동에서만 이런 ‘꿈의 공장’ 8개가 동시에 건설 중”이라며 “내년부터 전 세계에 중국산보다 저렴한 중동산 범용 화학제품이 쏟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원유만 팔던 중동 국가가 잇달아 석유화학 분야에 뛰어들어서다. 중국의 저가 공세에 그로기 상태로 내몰린 국내 석유화학업계에 새로운 강적이 추가된 셈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중동에서 짓고 있는 COTC 공장은 총 8개로, 투자 금액만 910억달러(약 123조원)에 달한다. 지난달 일부 가동에 들어간 쿠웨이트 국영석유화학회사(KIPIC) 공장을 시작으로 2027년까지 순차적으로 문을 연다.
원유부터 석유화학 제품까지 일관생산 시스템 구축에 나선 ‘중동의 변심’에 국내 기업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가격 측면에서 이길 방법이 없어서다. 현지에서 가동에 들어간 일부 공장의 에틸렌 생산단가는 t당 200달러 이하로, 300달러 안팎인 중국산보다 30% 이상 저렴하다. 내년 가동하는 아람코 COTC의 생산단가는 t당 100달러를 밑돌 것으로 추정된다.
공급 물량도 어마어마하다. 8개 공장의 에틸렌 생산량은 총 1123만t으로, LG화학 등 국내 6개사 생산량(1090만t)을 웃돈다. 지난해 세계 에틸렌 공급 가능 물량(2억2382만t)이 수요(1억7653만t)를 26.7% 넘어선 상황에서 중동의 값싼 제품이 시장에 추가로 풀린다는 얘기다.
김우섭/김형규/오현우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