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업은 숙명처럼 ‘사고’를 안고 산다. 예방에 힘을 쓴다고 다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이란 말뜻 그대로, 사고는 생각지도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불쑥 터진다. 이런 ‘불청객’이 금호타이어를 찾아온 것은 2016년이었다. 미국 조지아 공장 완공을 코앞에 둔 시점에 지붕 마감 작업을 벌이던 현지 채용 근로자가 추락사한 것. 당시 미국법인에서 일한 한 임원은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근로자 안전 문제에 엄격한 미국에서 사망사고가 난 만큼 제때 공장 문을 여는 것은 물 건너갔다는 걱정에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출동한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HSA) 소속 근로감독관은 금호타이어 임직원에게 하나하나 따져 묻기 시작했다. 규정에 맞게 안전교육을 했는지, 보호장비를 제대로 착용토록 했는지…. 한참을 살펴보던 근로감독관 입에선 뜻밖의 말이 나왔다. “사고 원인은 해당 근로자가 임의로 안전로프를 매지 않은 것이다. 금호타이어는 해야 할 조치를 다 했으니, 하던 대로 시험생산을 계속해도 좋다.” 그렇게 금호타이어는 사고 당일에도 공장을 돌릴 수 있었다.
똑같은 사고가 한국에서 일어났으면 어땠을까.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은 “한국에선 사망사고가 나면 거의 100% 작업중지 명령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실제 몇 년 전 A기업에서 추락사고가 났을 때 감독관이 제일 먼저 내린 조치는 모든 고소작업(高所作業)에 대한 작업중지 명령이었다. 사고 원인이 뭔지, 추가 사고가 날 수 있는 급박한 위험 요소가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그다음 일이었다.
문제는 한 번 작업중지 명령이 떨어지면 해제되기까지 하세월이 걸린다는 것이다. 작업중지 명령은 감독관 재량으로 그 자리에서 내리지만, 해제하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사고가 난 기업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고용노동부에 안전보건 실태 점검 및 개선 조치를 내놓는 것을 시작으로 다섯 단계의 ‘숙제’를 다한 다음 최종적으로 해제심의위원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위원회란 게 다 그렇듯이 멤버를 뽑고,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여는 데만 며칠이 걸린다. 작업중지부터 재가동까지 평균 40.5일(2020~2022년)이나 걸리는 이유다.
기업이 안전 조치를 소홀히 한 게 사고의 원인이라면, 그래서 사고가 다시 터질 위험이 있다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작업을 중지시키는 것은 근로자 보호를 위해 당연한 조치다. 하지만 사고 원인이 다른 데 있는데도 공장부터 세우고, 재가동마저 어렵게 하는 것은 대체 누구를 위한 조치인지 모르겠다.
이러니 기업인 사이에서 “제조업체에 작업중지가 어떤 의미인지 안다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부가 이런 식으로 기업에 벌을 주는 건 온당치 않다”는 말이 나온다. 경총이 지난주 “세계 어디에도 없는 해제심의위원회 절차만이라도 빼달라”는 건의문을 다시 한번 고용부에 제출했지만,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는 얘기도 들린다.
안 그래도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 코너에 몰린 게 우리 기업들이다. 첨단산업에서 미국을 따라잡기엔 힘에 부치고, 범용 제품은 이미 중국에 주도권을 내줬다. 온 힘을 다해 기업을 응원해도 모자랄 판인데, 우리 정부는 반대로 기업에 부담만 계속 안겨주고 있다.
요즘 시끄러운 상법 개정안도 그런 것 중 하나다. ‘기업 이사는 회사 이익뿐 아니라 주주 이익도 보호해야 한다’고 법에 명시하면 배임죄와 주주 대표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고 아무리 호소해도 정부는 듣는 둥 마는 둥이다. 이렇게,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고 싶은 이유는 늘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