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밸류체인에 올라탄 두산그룹주의 시가총액이 증가하고 있다. AI 테마가 반도체에서 전력망·전력기기, 에너지로 확대되는 가운데, 두산그룹주는 소형모듈원전(SMR·두산에너빌리티), 수소 연료전지(두산퓨얼셀), AI 가속기용 동박적층판(CCL·㈜두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외국인 자금을 대거 끌어들이고 있다.○선봉장은 SMR 앞세운 두산에너빌리티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두산에너빌리티는 최근 한 달 간(7일 기준) 12.2% 올랐다. 두산에너빌리티가 미국 SMR 기업 뉴스케일파워에 2조원 규모 주기기를 납품한다는 보도가 급등의 ‘트리거’가 됐다. 이 기간 외국인 순매수 금액은 2872억원에 달한다.
㈜두산 주가 또한 최근 한 달 간 28.8% 가파르게 오르며 지난 7일 기준 20만6000원을 찍었다. ㈜두산 주가는 올해 초 9만원대였지만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두 배 넘게 올랐다. 1조5300억원에 불과하던 시가총액은 3조4039억원으로 불어났다. 두산퓨얼셀도 최근 한 달 간 8.4% 상승했다.
이들 주가가 동반 상승한 것은 두산그룹주가 AI 밸류체인에 편입되고 있다는 평가 때문이다. ㈜두산 내 전자BG 부문은 엔비디아 AI 가속기에 들어가는 CCL을 납품할 예정이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산업 초기부터 투자한 SMR은 AI 데이터센터용 미래 전력원으로 각광받고 있다. SMR은 대형 원전보다 송전망 구축 부담이 덜해 차세대 무탄소 전원으로 주목받는다.
외국인과 기관의 매수세가 몰린 배경이다. 최근 한 달 간 외국인은 두산에너빌리티를 2872억원어치 순매수했다. SK하이닉스(2조445억원), HD현대일렉트릭(3900억원), 현대차(2945억원) 이어 네 번째로 많이 사들였다. 소형 건설기계 회사 두산밥캣 또한 미국 경기 호조에 힘입어 매년 1조원 이상 영업이익을 내는 그룹 캐시카우로 자리 잡았다.○혁신 사업으로 포트폴리오 재편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구축한 두산그룹의 미래형 포트폴리오가 시장에서 재평가 받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두산그룹 핵심 자회사인 두산에너빌리티는 2010년대 말 발전시장 침체와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 등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두산그룹은 2020년 3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긴급 자금 수혈을 요청했고, 1년11개월 만인 2022년 2월 채권단 관리체제를 조기 졸업했다.
당시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를 구하기 위해 인프라코어(건설기계), 솔루스(전지박·동박), 두산타워 등 핵심 계열사와 자산을 대거 팔았다. 동시에 그룹과 자회사 내 사업 포트폴리오를 원전, 수소, 풍력, 로봇 등 미래형 사업으로 재편했다. 당시 시장에선 두산그룹의 사업 재편에 대해 “돈 되는 계열사는 다 팔고 상용화까지 시간이 걸리는 사업만 남겼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AI 열풍으로 두산그룹이 선제적으로 구축한 혁신형 포트폴리오를 두고 긍정적 평가가 많아지는 분위기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올초 CES 2024를 방문해 “AI 기술에서 사업 기회를 찾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두산그룹주에 대해 “ AI 가속기판용 소재, 친환경 에너지, 로봇 등 혁신 사업을 두루 갖고 있다”며 “시장의 긍정적인 평가가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