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빅3 저물고…'신성' 알카라스 시대

입력 2024-06-10 18:47
수정 2024-06-11 00:32

프로 테니스 시즌 두 번째 메이저대회 프랑스오픈의 마지막날 시상식은 스페인 국가 ‘마르차 레알’로 마무리되곤 했다. 2005년부터 ‘흙신’ 라파엘 나달(스페인)이 이 대회에서만 총 14번의 우승을 거두면서 생겨난 결과다.

10일(한국시간) 마르차 레알은 올해도 파리의 하늘에 울려 퍼졌다. ‘신성’ 카를로스 알카라스(21·스페인·3위)가 생애 첫 프랑스오픈 우승을 차지하면서다. 알카라스는 “제가 테니스를 시작한 다섯 살 때부터 꿈꿔온 순간”이라며 기뻐했다. ‘나달 키즈’, 나달 기록을 넘어서다알카라스는 이날 프랑스 파리 스타드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프랑스오픈 남자 단식 결승에서 알렉산더 츠베레프(독일·4위)와 4시간19분의 혈투를 벌인 끝에 3-2(6-3 2-6 5-7 6-1 6-1)로 승리했다. 자신의 첫 번째 프랑스오픈 우승이자, 통산 세 번째 메이저 우승이다. 우승상금 240만유로(약 35억8000만원)와 함께 세계 랭킹도 2위로 뛰어오르게 됐다.

올해 프랑스오픈은 남자 단식 테니스의 세대교체를 보여준 무대였다. 2000년 이후 남자 단식은 노바크 조코비치(37·세르비아), 나달, 로저 페더러(43·스위스·은퇴)가 이끄는 ‘빅3’의 시대였다. 하지만 페더러가 2022년 은퇴했고, 나달도 부상으로 은퇴 수순을 밟고 있다. 조코비치가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지만, 그 역시 30대 후반인 데다 이 대회 8강을 앞두고 무릎 부상을 입어 수술대에 올랐다.

이들이 떠난 자리에는 ‘포스트 빅3’가 자리잡았다. 알카라스, 호주오픈 챔피언 얀니크 신네르(23·이탈리아·2위), 츠베레프가 주인공이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빅3 없이 치러진 프랑스오픈 결승에서 알카라스는 9년 만에 빅3가 아닌 첫 챔피언이 됐다.

알카라스는 ‘나달 키즈’다. 어린 시절, 방과 후 집으로 달려가 부모님에게 “나달의 프랑스오픈 경기를 보여달라”고 조르곤 했다. 그랬던 그는 US오픈(2022년·하드코트), 윔블던(2023년·잔디코트)에 이어 프랑스오픈(흙코트)까지 우승하며 가장 어린 나이에 메이저대회의 하드·잔디·흙코트를 모두 점령한 선수가 됐다. 호주오픈만 정복하면 4대 메이저를 모두 석권하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이루게 된다. 메이저 3승…‘빅3’ 이후 최초이번 대회에서 알카라스는 결승전까지 거침없이 질주했다. 우승 후보였던 스테파노스 치치파스(그리스·9위), 신네르에 이어 츠베레프까지 모두 제압했다. 결승에서는 기분 좋게 1세트를 따냈지만 2, 3세트를 내주며 위기를 맞았다.

츠베레프는 안정적인 서브를 무기로 자신의 서비스 게임에서 확실한 우위를 가져갔고 두 세트를 내리 따냈다. 츠베레프의 공세에 실수가 잦아졌고, 한때 코트 표면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4세트 들어 알카라스 특유의 날카로운 스트로크가 살아나면서 다시 한 번 승기를 가져왔다. 5세트에서 츠베레프가 알카라스의 촘촘한 수비 앞에 더블폴트를 범하며 무너지면서 결국 우승은 알카라스의 품에 안겼다.

남자 테니스의 새 강자로 떠오른 알카라스지만 ‘빅3’에 대한 존경을 잊지 않았다. ‘흙신’ 나달은 프랑스오픈에서 14회 우승했고, 조코비치는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 최다 24회 우승을 보유하고 있다. 알카라스는 “그들의 기록을 따라잡으려면 ‘외계인’이 돼야 한다”고 몸을 낮췄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