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들을 중심으로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폭로 경쟁이 불붙은 가운데 피해자가 콘텐츠 삭제를 요청하며 괴로움을 호소하며 나섰다. 이를 두고 당사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피해 사례를 폭로하는 행위 역시 "명백한 2차 가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성폭력을 전문으로 하는 이은의 변호사는 한경닷컴에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는 가해자 폭로, 사건에 대한 언급 모두 2차 가해"라며 "이 사건은 과거에도 2차 가해로 문제가 된 건인데, 또다시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가해자를 폭로하고, 사건을 파헤치는 행위가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봐야 하지 않겠냐"며 "적어도 피해자에 대해 언급은 하지 말았어야 했고,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는 이번 폭로로 누가 득을 보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범죄 피해자들에겐 잊힐 권리도 있다"며 "그 사건의 당사자가 본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일상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겐 누군가 그들을 알아보는 것도 고통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최근 유튜브 채널을 중심으로 밀양 사건의 가해자 44명을 폭로하는 콘텐츠가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콘텐츠 제작이 피해자의 동의 없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더불어 피해자의 동의 없이 영상을 제작하면서 사적 제제가 아닌 사적 이득을 위해 밀양 사건 가해자를 공개하는 게 아니냐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유튜브 콘텐츠 조회수가 수입으로 직결되는 시스템이기 때문.
밀양 사건 피해자 지원단체인 한국성폭력상담소는 5일 "유튜브 '나락 보관소'가 2004년 사건 피해자 측의 동의를 구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며 "피해자의 일상 회복, 피해자의 의사 존중과 거리가 먼, 갑자기 등장한 일방적 영상 업로드와 조회 수 경주에 당황스러움과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 측은 첫 영상이 게시되기 전까지 해당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면서 "영상 업로드된 후 지난 3일 영상 삭제 요청을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해자 가족이 동의해 44명 모두 공개하기로 했다는 공지에 대해 삭제, 수정할 것을 재차 요청했으나 (채널 측이) 정정하지 않고 있다"면서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피해자 측은 피해자의 일상 회복, 피해자의 의사 존중과 거리가 먼 일방적인 영상 업로드와 조회수 경주에 당황스럽다"고 우려했다.
밀양 사건 피해자의 여동생이라고 밝힌 A씨는 9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밀양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꼭 읽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직접 올려 최근 밀양 사건 관련 영상을 올린 유튜버 '판슥'에게 영상 삭제를 요청했으나 삭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호소했다.
A씨는 "(피해자인 언니는) 현재 판단 능력이 부족하고 지적장애가 있다. 당시 아픔을 겪었던 피해자의 여동생으로서 피해자와 의논하고 이 글을 적는다"며 "언니가 7개월 전 유튜버 '판슥'에게 전화해 피해 사실을 밝히고 판결문을 공개한 건 사실이지만, 판슥은 7개월 전 피해 당사자와 연락했을 때 본인 휴대폰 자동녹음 기능으로 녹취한 내용을 인제 와서 피해자 동의 없이 영상으로 올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유튜버는 피해자가 직접 요청 시 영상을 삭제해준다고 했지만 여러 차례 요청에도 삭제해주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판슥은 피해자의 음성뿐 아니라 당시 판결문까지 공개했다. 이에 대해서도 A씨는 "원하지 않았고, 정보로도 쓰지 말라고 했다. 유튜버 본인도 안 그러겠다고 했는데 올렸다"며 "당장 삭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영상 속 관련자들이 해당 유튜브 채널 고소에도 나선 상황이다. 경남경찰청은 '밀양 성폭행 사건' 가해자 신상을 공개한 유튜브 영상들과 관련해 명예훼손 혐의로 5건의 고소장이 접수됐다고 7일 밝혔다. 김해 중부경찰서에 2건, 밀양경찰서에 3건의 고소장이 각각 접수됐다.
고소인들은 한 유튜브 채널이 당사자 동의 없이 무단으로 개인 신상을 공개해 명예가 훼손됐다는 취지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고소인 중에는 가해자로 지목돼 직장에서 해고된 남성과 가해자의 여자친구라고 잘못 알려진 여성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영상은 형법상 명예훼손, 정보통신망법,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형법상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했을 땐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