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ESG 장벽 '발등의 불'…전방위 대응나선 현대차

입력 2024-06-09 18:23
수정 2024-06-10 00:56
현대자동차그룹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조항을 담은 표준계약서 갱신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글로벌 ‘ESG 장벽’이 현실화돼서다. 2027년 시행될 예정인 유럽연합(EU)의 ‘기업의 지속 가능한 공급망 실사 지침(CSDDD)’만 해도 위반 시 전체 매출의 최소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도록 못 박았다. 이와 관련해 현대차그룹은 주요 협력사에 ‘과징금 규모가 최대 8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내용의 자료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발 앞서 가는 유럽 완성차업체9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완성차업체는 이미 공급망 ESG 관리에 적극 나서고 있다. 폭스바겐은 최근 배터리 부품 공급사에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으로 생산한 양극재를 제조하지 않으면 입찰이 불가능하다고 통보했다. 양측은 표준계약서에도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BMW그룹은 협력사 선정 기준에 ESG 항목을 명문화했다. BMW그룹이 ESG 수준 미흡을 이유로 공급망에서 배제한 납품업체는 최근 3년간 150여 곳에 달했다.

최근 EU 등 규제당국은 기업의 직접적인 통제 범위를 넘어서는 공급망을 비롯해 제품 사용 및 폐기 등에서 발생하는 간접적인 탄소 배출까지 기업이 책임지도록 요구하고 있다. 한 ESG 전문가는 “상품에 표시된 ‘그린 라벨’에 대한 검증까지 기업에 요구하고 있다”며 “국내 기업으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대차가 지난해 세계에 판매한 자동차 421만7000대 중 유럽 지역 판매 비중은 15.08%(63만6000대)에 달한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부터 1차 협력사 300여 곳을 대상으로 ESG 평가를 해왔다. 이번 표준계약서 갱신은 그간의 평가에 근거한다. 다만 현대차그룹이 표준계약서를 갱신하더라도 당장 이를 2~3차 협력업체로 적용할 가능성은 낮다. 한 노무법인 관계자는 “중소 부품업체들의 열악한 상황을 고려하면 현대차의 이번 조치는 일종의 강력한 계도 방침이라고 보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 “ESG 이행 도우미 될 것”표준계약서 갱신을 진행하면서 현대차그룹은 협력사에 ESG 전담 조직을 신설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 ESG 평가에 대응하고, 법규 모니터링 및 대응 방안을 수립할 수 있는 조직부터 우선 마련하라는 얘기다. 이후 현대차그룹이 각 협력사의 ESG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인적·물적 지원도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부품업계 관계자는 “작년만 해도 현대차에 제출해야 할 ESG 서면 평가를 4~8월에 걸쳐 했는데 올해는 전담 조직 신설 여부 등을 포함해 이달까지 보고서를 완료하라는 지침이 전달됐다”며 “현장 실사도 당초 9월에서 7월로 앞당겨졌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협력사를 대상으로 한 ESG 평가 기간을 앞당기는 대신 개선 기간은 기존 3개월에서 4개월로 늘렸다. 11월까지 모든 준비 작업을 마치고, 연내 표준계약서 갱신을 끝내겠다는 목표다.

협력사가 5000여 곳에 달하는 현대차그룹이 신호탄을 쏘면서 중소 협력사 ESG 관리가 다른 업계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마이크로소프트(MS)로부터 ‘2030년까지 원자력발전 등을 포함한 100% 무탄소 전기를 사용하라’는 요청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MS는 최근 지속 가능성 보고서를 통해 “데이터센터 건설 붐으로 2020년 이후 총탄소배출량이 29.1% 늘었다”고 발표했다. 산업계 관계자는 “MS 지침을 이행하려면 삼성 등도 자체 공급망에 대한 ESG 관리를 강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정은/김재후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