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이었던 지난 6일 오후 7시30분 서울 양재역 6번 출구. 많은 인파가 오가는 지하철 입구 바로 옆 초록색 조끼를 맞춰 입은 반려견들이 눈길을 끌었다. 거리를 지나던 시민들은 느닷없이 등장한 초록 옷의 반려견들에게 반갑게 다가가거나, 신기한 듯 사진을 찍기도 했다. 견종과 크기가 제각각인 이들은 동네를 지키는 이른바 '반려견 순찰대'다.
이날 순찰을 위해 모인 서울 서초구 소속 순찰견(犬)은 총 14마리. 서울자치경찰위원회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대원들이다. 반려견과 함께하는 주인들 역시 같은 색의 조끼를 맞춰 입고 진지한 표정으로 팀장의 안내 사항을 경청했다. 평소 각자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에 자율적으로 순찰 활동을 하지만, 이날처럼 한 달에 한 번 계획된 '합동 순찰'땐 양재역에 이 같은 진풍경이 벌어진다.
순찰대원인 이상우(41)씨는 이날 기자가 순찰에 동행한다는 소식에 "쉽지 않을 텐데 괜찮겠냐"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이씨는 "보기엔 쉬워 보여도 확인해야 할 시설물, 우범 지역 등이 꽤 많다"며 "모든 대원이 자신의 반려견과 함께 직접 우리 동네를 더 살기 좋게 만들겠다는 책임감과 열정을 가지고 임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네 지킴이' 반려견 순찰대, 동행해보니반려견 순찰대는 지난 2022년 3월 서울 강동구에서 처음으로 도입됐다. 당시 40팀을 선발해 2개월 동안 시범 운영을 거친 뒤 서울 25개 자치구로 정책이 확대됐다. 현재는 부산 등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제도를 도입한 상태다. 서울 서초구 반려견 순찰대도 같은 해 9월 1기가 정식으로 발족했다. 올해 뽑힌 3기까지 합쳐 총 60팀이 활동 중이다.
이날 순찰 코스는 양재역부터 양재 시민의 숲까지였다. 14팀의 순찰대원은 선발대와 후발대로 나눠져 각자 임무를 맡았다. 선발대는 코스에 있는 흡연 부스 3곳의 화재 대비 상태를 점검하고, 영동1교 부근 화장실의 몰래카메라 설치 유무를 확인하기로 했다. 후발대는 인도에 놓인 킥보드, 자전거 등을 옮기고 범죄예방 비상벨 2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점검하는 일을 맡았다.
선발대가 출발한 뒤 후발대와 동행했다. 안전을 위해 인솔자의 지시에 따라 주로 길 한 쪽에 일자로 붙어 이동했다. 순찰대원들은 능숙한 듯 코스에 있는 곳곳의 시설물을 점검하고, 길을 막고 있는 킥보드를 한쪽으로 치웠다. 정비가 필요해 보이는 시설물은 수시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아내와 함께 나온 순찰대원 한제용(38)씨는 "반려견 속도에 맞춰야 하는 것도 있지만,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하면서 걸어야 하니 마냥 여유 있는 건 아니다"라며 "그래도 길을 지나는 시민들이 길을 비켜주는 등 많이 협조해줘 일이 수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차피 반려견과 산책은 거의 매일하지 않나. 그런 일상적인 일이 곧 동네를 위한 순찰 활동이 될 수 있단 점에서 의미가 큰 것 같아 신청했다"며 "반려인과 반려견, 동네에 모두 이로운 프로그램"이라고 강조했다.
코스 내에 있는 비상벨 점검 시엔 반드시 경찰에 점검 계획을 알려 협조를 구해야 한다. 이날 다행히 모든 비상벨이 정상 작동했다. 후발대 인솔자인 하미혜(53)씨는 "비상벨이 정상 작동하더라도 주로 아이들 손에 닿지 않는 위치에 있어 전부터 이를 꾸준히 지자체에 보고하고 있다"며 "반려견 순찰대는 그날 꼭 점검해야 할 사안 외에도 동네의 각종 문제를 확인하는 일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비닐봉지를 들고 걷는 몇몇 대원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걸으면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뜻하는 '플로깅' 담당이다. 20대 박윤희(가명)씨는 "순찰이라고 해서 반드시 무거운 일만 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환경을 정화하는 것도 지역에 큰 도움이 된다"며 "그냥 산책할 때보다 보람차다"고 말했다.
이날 횡단보도에 만난 한 시민은 반려견 순찰대가 익숙한지 다가와 말을 걸기도 했다. 그는 한 대원에게 차량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길가에 세워둔 봉 시설물이 파손됐다고 전했다. 양재동 주민이라는 그는 "얼마 전 반려견 순찰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렇게 불편 사항도 대신 지자체에 전달해주니 든든하다"고 말했다.
후각에 민감한 반려견의 특성에 따라 코스를 각자 정하는 개인 순찰 때 특히 순찰대가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다. 반려견이 관심을 보이면서 이동하는 방향으로 따라 움직이면서 동네를 더 샅샅이 살필 수 있어서다.
순찰대원 김인실(54)씨는 "얼마 전 개인 순찰 중 반려견을 따라 한 외진 주차시설을 돌아보다가 몸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노인분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며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눠보려는데 쓰러지셨다. 다행히도 신속하게 119에 신고해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종종 만취자를 신고하거나, 놀이터에서 흡연하는 청소년들을 잘 타이르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해 5월 강동구에선 한 반려견 순찰대원이 새벽 시간 길거리를 배회하다 다리를 다치고 쓰러져 있던 발달 장애인을 발견해 신고한 바 있다. 같은 해 7월 동대문구 소속 순찰대는 폭우 속에서 우산도 없이 넘어졌다 일어나길 반복하는 한 독거노인을 집에 모셔다드린 일도 있었다. "재미와 의미 모두 잡았다"…반려인 사이에서 입소문반려견과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려견 순찰대에 대한 관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서울시와 함께 해당 정책을 주관하고 있는 사단법인 '유기견 없는 도시'는 지난해 상반기 522팀을 뽑을 때 무려 1302팀이 신청했다고 밝혔다. 올 상반기에도 정원의 두 배에 달하는 신청자가 몰렸다.
유기견 없는 도시의 백준오 본부장은 "처음엔 의미 있는 사회적 활동을 통해 반려인과 비반려인 사이 갈등의 폭을 줄여보자는 취지였다"면서 "현재 독거노인을 찾아가는 실버 산책 등 별도의 합동 순찰도 여러 차례 진행해오고 있고, 실제로 성과도 많이 올렸다. 입소문이 나자 순찰대에 지원하는 반려인들도 매년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