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거 목적으로 사용하는 생활숙박시설(레지던스)에 ‘불법 딱지’를 붙인 이후 전국 곳곳에서 분양 계약자와 건설업계 간 법적 분쟁이 잇따르고 있다. 분양 계약자는 “주거가 가능한 것처럼 안내를 받았다”며 ‘사기 분양’을 주장한다. 건설사는 “계약 당시 주거 용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시했다”며 맞서고 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경기 안산시 성곡동의 2554실 규모 레지던스 ‘힐스테이트 시화호 라군 인테라스’ 계약자 200여 명은 지난달 30일 하나자산신탁과 MTV반달섬씨원개발PFV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호텔식 서비스가 제공되는 대단지 아파트와 같은 최고급 주거시설’이라는 설명에 속아 계약했으니 이를 취소해 달라는 내용이다.
한 계약자는 “단지 내 명문 국제학교에 자녀를 우선 입학시킬 수 있는 주거시설이 아니라 실거주가 불가능한 단순 숙박시설이란 사실을 알았다면 누가 이런 고가(4억~11억원)에 분양받았겠느냐”고 항변했다. 시공사는 “주거 용도로 이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렸다”고 주장한다.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의 레지던스 ‘마곡 르웨스트’(총 876실) 분양 계약자 416명도 지난 4월 시행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나머지 소유주도 추가 소송에 나설 태세다. 2일 2차 소송 설명회를 열었고, 현재 소송 신청을 준비 중이다. 앞서 부산과 충남 아산 등에서도 일부 계약자가 건설사를 상대로 비슷한 법적 분쟁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송민경 한국레지던스연합회장은 “충북 청주와 서울의 다른 레지던스에서도 집단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계약자와 건설사가 갈등을 빚는 양상이지만 ‘정부 책임론’에 대한 목소리도 커진다. 레지던스는 2010년대 후반부터 매년 1만 실 이상 공급됐다. 법적으로 엄연히 숙박시설이지만 그동안에 사실상 주거시설로 사용돼왔다. 편법 논란이 일자 정부가 오피스텔로 용도를 변경하지 않고 레지던스를 주거시설처럼 사용하면 내년부터 매년 건축물 시가 표준액의 10%를 이행강제금으로 물리기로 했다.
하지만 주차장, 복도 폭 등 규제 때문에 오피스텔로 용도를 바꾸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불법 논란’ 이후 금융권이 대출을 죄면서 레지던스 분양 계약자가 잔금을 마련하기도 어렵다. 한 업계 관계자는 “레지던스를 세금을 내고 주거용으로 쓰도록 하는 준주택 인정이 해결책”이라고 밝혔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