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바보야, 이번에도 문제는 경제였어

입력 2024-06-05 18:01
수정 2024-06-06 00:28
요즘 집권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에서 패배한 원인을 찾느라 바쁘다. 소위 <총선백서>를 작성해서 교훈으로 삼고자 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패배의 원인을 선거 전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을 강행한 점이나 채상병 사망 사건을 둘러싼 외압·은폐 의혹, 영부인 관련 논란, 윤석열 대통령의 소통 부재,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부적합한 선거 전략, 장기화된 의정 갈등 등에서 찾고자 하는 것 같다.

거론된 모든 문제가 패배에 어느 정도 기여했을지 모르지만, 우리 국민이 이 모든 문제에 그토록 관심이 많아서 여당에 참패라는 결과를 안겼을까? 필자도 유권자 중 하나지만, 솔직히 누가 호주대사가 되는지, 대통령이 얼마나 자주 기자들을 만나는지, 한 전 위원장의 선거 전략이 무엇인지 특별히 관심을 둔 적이 없다. 살기도 바쁜데 누가 이런데 그렇게 신경을 쓰겠는가? 다른 유권자들도 사정은 거의 비슷할 것이다. 그럼 도대체 왜 국민의힘은 참패했을까?

미국의 유명한 선거 전략가 제임스 카빌은 1992년 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 후보 간에 치러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를 주요 선거 좌우명으로 삼았다. 그는 클린턴 후보가 부시 대통령의 경제 성적을 집요하게 비판하게 주문했다. 결과는 클린턴의 승리였다. 경제 문제가 선거에서 그만큼 중요하다는 방증으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 사례다. 필자도 지난 4월 22대 총선에서 경제 문제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우선 국민들이 최근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식료품과 외식 물가 상승을 생각해 보자. 최근 몇 년간의 식료품 물가 상승률, 외식 물가 상승률, 그리고 통상적인 소비자물가지수에 근거한 물가 상승률을 비교해보면 선거 전 몇 달의 통상적 물가 상승률은 3% 내외로 그다지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물가가 잡혀가는 듯하다.

그러나 식료품 물가 상승률은 2024년 2월부터 4월까지 10%를 훌쩍 넘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던 기간의 몇 달을 제외하곤 이렇게 높은 적이 최근 없었다. 외식비 상승률도 이보다는 아니지만, 통상적 물가 상승률을 웃돌고 있다. 국민들의 삶에 가장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먹거리인데, 식료품 물가가 이 지경이었으니 어느 국민이 ‘정부가 잘했다’고 손뼉을 치면서 여당에 표를 주겠는가? 오히려 108석을 건진 여당이 선방했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럼 도대체 왜 그렇게 식료품 물가가 올랐나? 다른 나라도 그런가? 두 번째 질문에 먼저 답하면 그렇지 않은 나라가 많다. 예를 들어 미국은 식료품 물가 상승률이 통상적 물가 상승률보다 낮은 경향을 최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최근의 급격한 식료품 물가 상승은 한국의 고유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한국은 인구에 비해 경작지가 협소한 나라여서 곡물 자급률이 29%(2022년 기준)에 불과하다. 쌀과 계란 정도가 수입이 필요 없을 뿐이다. 나머지 식량 대부분은 수입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갖고 있다. 소와 돼지 등의 축산 사료도 대부분 수입해서 사실상 고기도 수입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니 식품 가격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것은 대미 환율이다. 지난 몇 년간의 원·달러 환율을 살펴보면 최근 들어 급등한 모습이 눈에 띈다. 2022년 7월 달러당 1300원을 돌파한 후 내려갈 기미가 안 보인다. 그 이전 몇 년간은 달러당 1100원대에 머물러 있었다. 결국 급격한 식료품 물가 상승의 원인은 급등한 환율로 보인다.

그러면 원·달러 환율은 왜 급등했나? 미국 달러화 강세는 현재 세계적 현상이나 원화 약세는 다른 나라 통화에 비해 심한 편(달러인덱스 기준)이다. 가장 큰 이유는 역대 최대로 벌어진 한·미 정책 금리차로 보인다. 즉, 미국이 정책 금리를 올릴 때 망설이며 정책 금리를 따라 올리지 못한 것이 식료품 물가 상승의 가장 큰 이유란 것이다. 결국 여당 선거 참패의 가장 큰 원인은 제때 올리지 못한 정책 금리였다. 이번 총선에서도 문제는 역시 경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