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자산 5조원 이상)이 세운 공익법인의 공익 목적 지출액 증가율이 연 평균(2018~2022년) 3.0%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매출 500대 기업 사회공헌지출 증가율(연 평균 7.9%)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공익 목적으로 설립한 재단의 공익활동이 대기업의 자체 사회공헌 활동에도 못 미칠 만큼 부진하다는 의미다.
이유를 보면 문제가 적지 않다. 공익법인에 대한 비상식적 과잉규제와 제약 탓에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싶어도 하기 힘든 답답한 상황이 해소되지 않는 것이다. 높은 상속·증여세로 공익활동을 위한 재원 확보부터 쉽지 않다. 공익재단 수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배당의 원천인 주식 출연을 늘리려고 하면 거액의 상속·증여세를 감당해야 한다. 상당수 선진국에선 공익법인 출연 주식은 상속·증여세를 완전 면세해준다. 하지만 한국은 지분 5%(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기준)까지만 면제다. 5% 초과 지분에는 최고 60%의 살인적 세율이 적용된다.
공익재단 보유 지분에 대한 의결권 제한도 입법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강력하다. 대기업 공익재단 지분은 원칙적으로 보유 계열사 의결권 행사가 금지된다. 임원 선임·해임, 합병·영업 양도 등 소수의 안건에만 15%까지 제한적으로 의결권 행사가 허용된다. 이런 첩첩 규제 아래에서 공익법인을 통한 기업의 사회공헌 확대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다. 50여 년 전 출범한 유한재단 외 모범사례가 등장하지 않은 것도 당연한 귀결이다.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등이 재산 태반을 재단에 출연하고 활발한 공익활동을 벌이는 미국과 대비된다.
공익재단을 통한 기업 지배와 사회공헌 확대는 미국 외 다른 선진국가에서도 장려된다. 스웨덴 발렌베리그룹은 16개, 네덜란드 하이네켄그룹과 이케아그룹은 각각 7개와 3개의 공익재단을 운영한다. 주식을 기증받은 재단이 기업 해체를 막아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고 사회공헌도 늘리고 있다. 공익재단이 마치 불법, 탈법의 온상이 될 것이란 일각의 지적이 있지만 비상식적이다. 큰 사고가 예상되니 고속도로를 건설하지 말자는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탈 시 세제 혜택 등을 박탈하면 되고, 위법에는 엄정 대처하면 된다. 공익법인 활성화로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이고 공익 기여를 확대하는 게 윈윈이자 글로벌 스탠더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