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주식 펀드 설정액이 최근 6개월 사이 1조원 넘게 증발했다. 다른 나라 대비 부진한 수익률에 투자처로서 매력이 떨어지면서다. 이들 자금은 미국 중심의 북미주식 펀드로 옮겨갔다.
6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국내주식형 펀드 총 1018종에서 지난 6개월 동안 1조615억원 규모 자금이 빠져나갔다. 같은 기간 북미주식형 펀드 132종에 3조4379억원이 새로 유입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인도(5675억원)와 일본(1361억원), 중국(778억원) 등도 자금이 들어왔다.
투자자들이 국내주식형에서만 발을 빼고 있는 셈이다. 최근 증시가 반등할 때 투자자들이 대거 환매에 나섰기 때문으로 보인다. 코스피지수는 지난 4월 중 2550선을 찍고 약 한 달간 반등했다. 특히 실적 시즌과 맞물려 반도체와 화장품, 밸류업 관련 펀드에서 이익 실현을 한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탈한 자금은 미국주식 펀드로 옮겨갔다. 증권가 분석에 따르면 실제 해외 주식펀드에는 지난 2월부터 달마다 1조원 넘는 돈이 유입되고 있다. 미국 빅테크에 대한 기대가 커진 영향이다.
인공지능(AI) 대표 글로벌 수혜주로 꼽히는 엔비디아가 빅테크 랠리를 이끌고 있다. 주가는 올 들어 137% 넘게 폭등한 상태다. 지난달 28일 기준으로는 국내 투자자들의 엔비디아 보관금액이 15조2000억원에 달해, 약 4년 만에 테슬라를 제치고 '서학개미' 보유 해외주식 1위에 올랐다. 심상치 않은 폭등세에 서학개미들이 너도나도 뭉칫돈을 넣은 것이다.
이 때문인지 수익률을 봐도 미국주식 펀드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지난 6개월간 북미주식형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22.59%다. 인도도 21%대, 일본과 베트남은 16%대 수익률을 올렸다. 반면 국내주식형 펀드는 9%대 수익률에 그쳤다.
김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미국주식펀드 수익률이 꾸준히 오르면서 심지어 코로나19 사태 때보다 더 많은 자금이 해외주식 펀드로 옮겨가고 있다"고 짚었다.
미국주식 펀드로의 '머니무브'는 하반기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미 빅테크 주가가 연일 최고치를 기록 중인 가운데 이들이 주도하는 AI 랠리도 여전할 것이란 관측이 짙기 때문이다.
대형 펀드들도 1분기 빅테크주를 집중 매수했다. 억만장자 투자자 대니얼 로브가 운영하는 헤지펀드 써드포인트는 지난해 말 전량 팔았던 알파벳을 최근에 다시 사들였다. 지난해 보유 비중을 10% 줄였던 아마존도 최근 20% 더 늘렸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는 엔비디아의 보유 주식 수를 지난해 말과 비교해 최근 2.6배로 늘렸다.
박형중 우리은행 투자전략팀장은 "올해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증시가 상승가도를 달리는 가운데 국내 증시만 박스권에 갇힌 상태"라며 "이미 개인 해외주식잔고 중 미국 비중은 90%에 달하는데, 이들은 앞으로도 국내 증시 대비 고수익과 여러 투자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미국 시장으로 건너갈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윤재홍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외부 세미나를 나갈 때마다 투자자들도 해외 주식에 대해서만 질문해서 서학개미들이 늘고 있단 게 피부로 체감될 정도"라며 "투자자는 결국 수익률 높은 주식으로 시선을 옮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덧붙여 "추세적으로는 AI랠리 하에 미국주식이 여전히 가장 매력적"이라고 밝혔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