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불황에 철근 과잉공급 겹쳐…동국제강, 낮엔 전기로 끈다

입력 2024-06-04 18:27
수정 2024-06-05 17:51

아파트 뼈대 등에 사용되는 철근은 업계 1위인 현대제철 등 8개 회사가 국내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산 철근을 꺼리는 건설업계 분위기 덕에 내수 점유율이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철근업계는 최악의 부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건설 경기가 나빠진 것도 이유지만 만성적인 초과 공급이 해소되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다. 섣불리 생산량을 줄이면 경쟁사에 시장을 뺏길 수 있다는 생각에 ‘치킨게임’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동국제강이 이런 분위기를 깨고 상시적인 감산 조치에 들어갔다. 업계 2위 업체가 감산에 나서면 나머지 업체도 영향을 받아 ‘출혈 경쟁’을 멈출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야간 조업 상시화로 60% 생산 선언
철근시장은 공장 생산 가격이 유통사의 판매 가격보다 높은 상황이다. 4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철근 유통 가격은 t당 70만5000원이었다. 2022년 12월 말 100만원에서 29%가량 하락했다. 철근 생산 원가는 고철가 하락 등으로 같은 기간 약 95만원에서 85만~90만원대로 5~10% 내리는 데 그쳤다.

판매 가격 하락의 주요 원인은 건설 경기 불황이다. 신규 아파트 건설이 급감한 게 직격탄이 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주택 인허가는 7만4558가구로 1년 전 8만6444가구보다 13.7% 줄었다. 그 여파는 철강업체와 유통사가 고스란히 떠안았다. 철근이 주력 제품인 동국제강은 직격탄을 맞았다. 동국제강의 1분기 영업이익은 525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1270억원)의 반 토막이 됐다.

야간 1교대는 이런 상황에서 동국제강이 꺼내들 수밖에 없는 카드였다. 4조3교대로 24시간 생산하던 시스템을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야간 생산 체제로 전환하기로 한 것. 낮에 출근하는 직원은 전기로 보수 등 지원 업무를 맡는다. 일시적으로 주간 가동을 멈춘 적은 있어도 상시적으로 야간 생산을 하겠다고 결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게 되면 지난해 87.7%이던 공장 가동률은 65% 이하로 떨어진다.

전기료도 아낄 수 있다. 낮 시간인 오전 8시~오후 6시엔 전기료가 ㎾h당 평균 208원이다. 오후 6~10시는 ㎾h당 평균 160원, 이 밖에는 피크 시간의 절반 이하인 ㎾h당 평균 105원까지 떨어진다. 철근 생산 가격의 10%가 전기료인 점을 감안하면 생산비를 5% 정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다른 회사도 감산 들어갈 듯
업계에선 동국제강의 선제적인 조치에 다른 회사도 동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철근 공급 과잉은 업계 전체를 괴롭히는 ‘공동의 적’이어서다. 생산량 감축 분위기는 벌써 감지되고 있다. 현대제철은 예정에 없던 인천공장 전기로 특별 보수를 지난 2월부터 6월까지 진행 중이다. 정기 보수는 보통 2~3주 이어지는데 4개월로 늘렸다는 건 사실상 감산에 들어갔다는 의미란 해석이 나온다.

통상 정기 보수 계획은 이전 해에 잡지만, 이번 보수 계획은 연초에 수립했다. 이 회사는 같은 이유에서 충남 당진 전기로도 9월 중하순부터 3개월간 특별 보수하기로 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생산량 감축으로 재고를 탄력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환영철강은 이달 당진공장을 10일간 임시 가동 중단하기로 했다. 한국특강의 경남 칠서공장은 8일간 휴업한다.

철근업체들은 이처럼 각자 경영 상황에 따라 감산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감산을 논의하면 공정거래위원회 제재를 받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는 2013년과 2018년 담합으로 두 차례 수천억원대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철강업체 관계자는 “과잉 공급은 오래전부터 지속됐지만 치킨게임을 멈추지 못해 감산 선언을 하지 못한 것”이라며 “이번 동국제강의 조치는 ‘감산 결정을 철회하지 않을 테니 동참해달라’는 다른 업체들을 향한 호소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철강업계는 수요 감소에 따른 수익성 하락이 미래 투자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2050년 탄소 제로’를 위해선 수소환원제철소를 갖추는 등 수십조원의 투자가 필요한데, 곳간이 비고 있기 때문이다.

성상훈/김우섭/김형규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