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트윈과 인공지능(AI) 기술을 바탕으로 환자의 뇌전증을 진단하는 기술이 의료 현장에 적용된다. 바이오 스타트업 엘비스가 개발한 AI 뉴로텍 플랫폼 ‘뉴로매치’를 통해서다. 뇌전증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이 좋아지고, 비용 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신경학·생명공학과 교수(사진)는 2일(현지시간) 실리콘밸리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지난 15년간 연구를 진행해 디지털 트윈 기술을 개발했고,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었다”며 “의료진이 더 많은 환자를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달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의료원 서울아산병원 등 서울지역 4개 병원과 대구의 동산병원, 경북대병원, 영남대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대구파티마병원 등 지역 6개 병원에 뉴로매치가 설치될 예정이다. 대구에는 1호 ‘뉴로매치 센터’를 열어 의료진과 학생을 대상으로 뉴로매치 관련 교육을 제공할 계획이다.
뇌과학자인 이 교수는 한국 여성 최초의 스탠퍼드대 종신교수다. 그는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에 바이오 스타트업 엘비스를 설립해 뉴로매치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뉴로매치는 뇌 진단 AI 솔루션으로 환자의 뇌를 디지털 트윈으로 제작해 뇌의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는 “치료 방법을 찾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진단”이라며 “뇌의 활동을 정밀히 측정해 환자의 뇌가 정상적인 뇌와 어떻게 다른지 파악하는 것이 뉴로매치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엘비스를 창업했다. 엘비스(LVIS)라는 사명도 ‘뇌 회로를 생생하게 시각화한다(Live visualization of brain circuits)’는 문장에서 따왔다. 이 교수는 “뇌 질환과 관련된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뇌를 직접 볼 수 없기 때문”이라며 “디지털 트윈 기술을 개발한 만큼 정확한 뇌 질환 진단과 치료라는 난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마련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뉴로매치에서 원스톱으로 진단이 이뤄지면 치료에 걸리는 시간이 줄고 의료비 부담도 경감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로매치의 첫 번째 타깃은 흔히 ‘간질’로 불리는 뇌전증이다. 뇌전증은 환자가 많고, 각종 뇌 질환과 연결된 질병이다. 이 교수는 “뇌전증을 치료하면 치매 등 다른 뇌 질환 발생 위험을 줄일 수 있다”며 “치매, 수면장애, 파킨슨병, 자폐 순으로 진단 및 치료제 개발에 나설 예정”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AI 등 신기술이 의료산업을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에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일들이 AI로 인해 가능해지고 있다”며 “다만 AI 기술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좋은 데이터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달 한국을 시작으로 올해 하반기 미국 시장에도 뉴로매치를 보급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치매 진단 및 치료에 적극적으로 나선 뒤 2026년께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글로벌 AI 의료 시장은 2021년 110억달러(약 15조원)에서 2030년 1880억달러(259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 디지털 트윈
가상공간에 실물과 똑같은 ‘쌍둥이’를 만들어 다양한 모의시험을 해보는 기술. 미국 가전업체 제너럴일렉트릭(GE)이 처음 개발한 개념이다. 제조와 교통, 건설, 토목 분야 등에서 활용 중이다. 가상의 모델과 현실이 통신 기술로 연동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시뮬레이션, 실시간 모니터링 등과 구분된다.
실리콘밸리=최진석 특파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