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다. 최근 서울고등법원은 의대 증원의 집행을 정지해 달라는 의대 교수와 전공의, 의대생 등의 신청을 기각 또는 각하했다. 그런데 서울고법의 결정을 ‘법원이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의대 증원의 정당성을 인정했다’고 이해한다면 잘못된 해석이다.
행정소송법은 일정한 요건 아래 처분의 집행정지를 허용하고 있다. 행정처분의 적법 여부는 본안재판에서 충분한 심리를 거쳐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집행정지 사건에서는 △신청인의 큰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필요가 있을 것 △집행정지 시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을 것이라는 요건이 충족되는지를 심리할 뿐이다.
이를 법원의 판단에 적용해보자. 서울고법은 의대 증원의 집행을 정지하는 것은 의료 개혁이라는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런 이유로 의대생들의 신청은 기각됐고, 나머지는 신청인 적격을 갖추지 못했기에 각하됐다. 대법원에서 결론이 바뀔 가능성은 높지 않다. 대법원은 집행정지의 요건이 충족됐는지를 다시 심사하지 않는다. 하급심의 판단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지, 기존의 대법원 판례와 상반되는지 여부만을 판단해서다.
나아가 의대 증원의 취소를 구하는 본안소송에서도 법원은 해당 처분에 무효 내지 취소사유에 해당하는 절차적·실체적 하자가 있는지를 심리할 뿐이다. 그 처분이 정책적으로 타당한지, 2000명이라는 증원 규모에 근거가 있는지 등은 심리 대상이 아니다. 이는 로스쿨 정원이나 변호사 합격자 수, 수의학과나 반도체 관련 학과의 정원을 늘리는 처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의료계와 충분한 협의를 하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관련 법령에서 필수적인 절차로 규정하지 않는 한 업계와의 논의는 정책 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증원을 원만하게 추진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처분의 절차적·실체적 하자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의대 증원을 통한 의료 개혁은 정부가 책임지는 영역이지 처분의 상대방(의대를 보유하고 있는 대학의 총장)도 아닌 의료계가 법률상의 이익을 주장하며 사법심사를 구하기에 적절한 영역이 아니다. 서울고법 결정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대한의사협회장이 “이번 결정을 한 재판장에게 대법관직에 대한 회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그래서 매우 부적절하다.
만약 집행정지가 받아들여졌다면 의료계는 나라를 구한 결정이라고 칭송했을 것인가? 재항고가 기각되면 대법관을 비난할 것인가? 이런 식이라면 각종 고소·고발과 소 제기를 통해 정치적인 사건을 사법기관에 던져놓고 각자의 유불리에 따라 해당 재판장에 대한 칭송과 비난을 일삼는 정치권과 다를 것이 없다. 의료계의 주장이 제 밥그릇 지키기가 아니라 정말로 국민 건강을 위한 것이라면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우선이고, 이들을 설득하려면 최소한의 매너는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