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가 '협치 성과 부족'이라고 비판받으며 끝난 가운데, 22대 국회 역시 '극한의 대결'을 예고했다. 야당 의원들은 22대 국회 개원을 기념하며 각 의원실로 배달된 윤석열 대통령의 '축하 난'을 받지 않겠다며 쓰레기 취급한 모습을 인증했고, 여당도 이런 야당에 맞서 단일대오를 강조했다.
지난달 31일 정치권에 따르면, 일부 야권 의원들이 윤 대통령의 당선 축하 난 수령을 거부하고 나섰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 대통령의 축하 난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 반송할 것"이라며 "국회가 대통령에게 바라는 건 축하 난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국회가 의결한 채 해병 특검법, 민주유공자법 등을 수용하라" 말했다.
최민희 민주당 의원도 "내어놓았으니 가져가십시오"라며 의원실 밖 복도에 난을 내놓은 사진을 게재했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난이 뭔 죄가 있겠습니까. 난해합니다만 잘 키우겠다"면서도 "곧 축하를 후회하게 만들겠다"고 경고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역대 유례없이 사익을 위하여 거부권을 오·남용하는 대통령의 축하 난은 정중히 사양한다"며 사진을 찍어 올렸고, 같은 당 김준형 의원도 해당 난에 '버림'이라는 메모지를 붙인 사진을 올리며 "윤석열 불통령실에서 보낸 당선 축하 난을 버린다"며 "밤새 와있어서 돌려보낼 방법이 없다"고 썼다.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도 축하 난에 '국회 입법권을 침해하고 거부권을 남발하는 대통령의 난을 거부합니다'라고 써 붙인 사진을 올렸다.
진보당 소속 윤종오·전종덕·정혜경 의원 3명 역시 축하 난을 거부했다고 언론에 별도 공지했고,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축하 난에 물을 주는 사진과 함께 "대통령님의 지지율도 쑥쑥 오르기를 바란다"고 썼다.
대통령의 축한 난을 대하는 야당 의원들의 이 같은 태도에 국민의힘 역시 뿔이 났다. 장동현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조국혁신당에게 '민주 정당'과 '국민의 대표'로서의 품격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 일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도의도 저버린 행태"라며 "마구잡이로 들이받고, 싸우기만 하는 분노의 정치로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국회의 모습은 유권자가 기대하는 22대 국회의 모습과는 정면으로 상충하는 것이다. 이날 공개된 한국갤럽의 정례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가 22대 국회에 당부하는 말(자유응답)로는 '서로 싸우지 말고 화합·협치'가 19%로 가장 많았다.
'화합·협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대는 한결같았다. 갤럽에 따르면, 4년 전 21대, 8년 전 20대 국회에 대한 유권자의 당부에서도 '화합/협치'가 1순위였다. 그다음은 '당리당략보다 국민 우선시', '서민 위한 정치/민생 문제 해결', '열심히 책임 다할 것/일하는 국회'(이상 8%), '경제/물가 안정'(6%) 등이었다.◆'독주' 예고한 민주당…'단합' 국민의힘도 '강경 대응' 모드 그러나 이번 국회에서도 '더 매운맛'은 이미 예고됐다. 여야 각각 21대 국회 갈등의 산물을 22대 국회로 끌어왔기 때문이다.
우선 민주당은 22대 국회 첫날인 지난 30일 1호 당론 법안으로 '채상병 특검법'을 발의하며 대여 공세의 드라이브를 걸었다. 여기에 이성윤 의원이 31일 김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과 명품 가방 뇌물 수수 사건 등을 수사 대상으로 명시한 '김건희 종합 특검법'(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의 주가조작 의혹 등과 관련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하며 대여 공세의 수위를 올렸다.
민주당은 22대 국회 원 구성과 관련해서도 '독주'를 암시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원 구성과 관련해 "국회부터 법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번에는 법대로 6월7일까지 원 구성, 상임위 구성을 꼭 마쳐야 한다"며 "대통령께서도, 여당도 '법대로' 좋아하지 않느냐. 민주주의 제도는 다수결이 원칙이다. 가능하면 합의하되 소수가 몽니를 부리거나 부당하게 버틴다고 해서 거기 끌려다니면 민주주의가 아니다"고 말했다. 사실상 법사위원장과 운영위원장 자리를 민주당이 모두 가져가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여야 다음으로 가장 의석수가 많은 조국혁신당은 아예 1호 법안으로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하며 이빨을 드러냈다. 박은정 혁신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의 검사·장관 재직 시 비위 의혹 및 자녀 논문대필 등 가족의 비위 의혹 등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은 손준성 고발 사주 의혹, 윤석열 대통령의 징계 취소 소송 항소심 고의 패소 의혹 등을 수사 대상으로 삼았다.
조국혁신당은 아울러 '김건희 종합특검법'과 '윤석열 대통령실 수사외압 의혹의 채해병 특검법'등 3특검법을 22대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며 대놓고 정쟁을 예고했다.
반대로 국민의힘 역시 민주당 반대로 21대 국회에서 처리가 무산된 법안들을 다시 발의하며 처리 의지를 다졌다. 31일 국민의힘이 1호 당론으로 발의한 '민생공감 531 법안'에는 민주당이 반대했던 법안이 대거 포함됐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상속세제 개편 등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국민의힘은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단합, 결속을 내내 강조하며 '강경 대응' 기조를 확인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2대 국회에 임하면서 제일 중요한 화두는 단합"이라며 "22대 국회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단합과 결속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1박 2일 일정으로 떠난 국회의원 워크숍을 이날 마무리하며 "인류의 역사는 소수가 다수를 물리치는 역사였다"며 소수인 국민의힘이 다수인 민주당을 '물리치자'고 암시했다. 그는 "어떻게 소수가 이기느냐. 거기는 정의와 평화 그리고 아픔과 슬픔이 있는 곳을 기쁨과 행복으로 바꾸는 큰 힘이 내제해 있을 때 반드시 그 소수는 아무리 수가 많아도 다수를 이겨내는 것이 우리 역사의 산 증언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22대 국회 역시 21대 국회의 '도돌이표'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다. 거야가 입법 독주를 벌이고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는 국회의 모습이 무한 반복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의원들도 공식적으로는 '협치'를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 22대 국회를 향한 기대치는 바닥을 치는 모습이다. 한 여권 초선 의원은 "시작도 전에 최악의 국회가 될 것이라는 게 뻔히 보이는 상황이지 않나. 21대 국회보다 나아질 수가 없는 여건"이라며 "의정 생활을 하며 돌파구를 만들어보겠다"고 말했다.
한 재선 의원도 "국회의원 한 명 한 명이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점차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이 정말 큰 문제"라며 "어느 당이랄 것 없이 '한 사람'이 각 당을 쥐고 흔드는 모습이 계속되는 한 여야 극한 대치는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