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글로벌 IB 간부가 투자"…앱 깔자 낚였다

입력 2024-05-30 18:31
수정 2024-07-04 12:15
미국 대형 투자은행(IB) JP모간의 고위 간부라며 투자자들에게 접근해 돈을 뜯어낸 ‘주식 리딩방’ 사기범이 경찰에 붙잡혔다. 피해자들은 바람잡이들의 ‘수익 인증샷’과 주식거래 앱과 비슷한 가짜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 속아 거액을 맡겼다가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최근 유명인이나 투자 전문가를 사칭해 주식·코인 투자방에 초대한 뒤 돈을 가로채는 리딩방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경찰, ‘JPM 사칭’ 불법 리딩방 조직 검거 30일 경찰 등에 따르면 대구 달서경찰서는 JP모간 직원을 사칭해 리딩방 투자 사기를 벌인 사건을 접수해 주범을 검거한 충남경찰청으로 이첩했다. 이들은 지난해 말부터 카카오톡 채팅방 등에서 모은 투자자에게서 수십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피해자를 “1000억 프로젝트에 끼워주겠다”며 카카오톡·텔레그램 채팅방에 초대했다. 피해자 엄모 씨는 “IB 전문가들이 고도화된 방식으로 주식을 운용하고, 이윤이 1000억원에 도달하는 즉시 해산한 뒤 투자금에 이익을 더해 돌려주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일당은 리딩방에 모은 피해자들에게 가짜 매매 앱 ‘JPMSM’을 설치하도록 했다. 앱을 설치한 뒤에는 일명 ‘고객센터’에서 수시로 연락해 “장외 블록딜(주식 대량매매)에 투자하려면 당장 돈을 넣어야 한다”며 대포통장에 송금하도록 유도했다.

이들은 올초 피해자들이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하자 “수익의 40%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며 수개월간 시간을 끌었다. 피해자들의 성화에 “수익을 실현해 송금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난달 16일 돌연 채팅방을 폭파하고 잠적했다.

IB업계 전문가는 “초대형 IB 전문가들은 개인 돈을 모아 블록딜을 하지 않으며 대형 자산운용사가 사모투자를 벌일 때도 SNS로 영업하거나 고객센터를 통해 송금을 요구하는 사례는 없다”고 설명했다. 투자자문업체로 등록되지 않은 업체가 채팅방이나 온라인 양방향 채널을 통해 ‘주식투자 리딩’을 하는 건 자본시장법상 불법이다. ○세계적 사모펀드·투자업계 거물 사칭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접수된 투자리딩방 사기는 1783건으로 지난해 4분기 1452건 대비 22.7% 늘었다. 가짜 HTS를 활용하거나, 비상장 주식 투자를 유도하는 리딩방 사기에 유명 경제인·투자은행을 사칭하는 방식이 더해지고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금융감독원에는 최근 세계 최대 사모펀드 중 하나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최고경영자인 한국계 조셉 배와 미국에서 활동하는 창업투자자 이인식 버텍스US 대표를 사칭한 리딩방 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전해졌다.

‘테마형 주식 투자’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사기꾼들이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최근 리딩방 사기꾼들이 전문가를 사칭해 태양광, 2차전지 업종의 중요 키워드를 언급하며 일반인을 현혹하고 있다”고 했다.

리딩방 사기 중에는 투자금을 돌려주겠다며 또다시 사기를 벌이는 2차 범죄 사례도 많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돈을 되찾고 싶어 하는 피해자들의 마음을 이용한 2차 사기는 더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다빈/안정훈 기자 davin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