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잘못된 재정정책이 위기 부를 수도"

입력 2024-05-30 18:49
수정 2024-05-31 01:56

“물가 안정뿐 아니라 금융 안정도 한국은행의 책무입니다. 금융 안정을 고려한 중립금리는 물가 안정만 고려한 것보다 높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30일 한국은행 별관에서 토마스 요르단 스위스중앙은행 총재와 한 대담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총재는 “한국은행은 4~5개의 모형을 통해 특정 수준이 아닌 범위로 중립금리를 추정하고 있다”며 “이번 콘퍼런스에서 환율과 경상수지 등 국제 요인의 영향을 더 많이 고려한 추정 모델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요르단 총재는 이에 대해 “스위스가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중립금리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압력이 없는 잠재성장률 수준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이론적 금리 수준을 말한다. 이 총재가 금융 안정까지 고려한 중립금리 수준을 언급한 것은 앞으로 긴축 기조의 통화 정책을 정상화하는 과정에 금리 인하 폭이 제한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날 콘퍼런스는 ‘중립금리의 변화와 세계 경제에 대한 함의’를 주제로 열렸다. 요르단 총재는 기조연설을 통해 중립금리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다시 구조적으로 상승했는지에 대해 “판단하기 이르다”고 밝혔다. 중립금리 활용 방안에 대해선 “중립금리는 모형에 따라 추정 범위가 넓다”며 “다른 지표를 참고하거나 경제학자들의 판단을 더해 신뢰할 수 있는 중립금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2년 임기를 마치고 오는 9월 퇴임하는 요르단 총재는 ‘퇴임을 앞두고 중앙은행들을 위해 한 말씀 해달라’는 이 총재의 요청을 받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권한이 좁게 유지될 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을 위한 정책을 제외하고는 효과적인 통화정책 수단이 없다”며 “통화정책의 초점을 물가에 맞춰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날 포럼에서 카를로스 카르발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가톨릭대 교수는 “고령화된 국가일수록 실질금리가 낮은 수준에서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루트비히 스트라우프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명목 금리보다 높더라도 부채가 지속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며 “과도한 정부부채 증가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도 토머스 사전트 미국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의 질문에 답하면서 “향후 위기가 있다면 통화정책의 잘못보다는 재정정책의 잘못일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