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입법원(의회)에서 친중 성향의 야당 주도로 총통의 권한을 축소하고 의회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친미·반중 성향의 라이칭더 총통이 취임한 지 8일 만이다. 중국이 지난 23~24일 대만을 포위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을 하는 등 반중 기조 전환을 압박하는 가운데 정책 추진에서도 라이 총통의 운신 폭이 크게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방 기밀 중국에 노출 우려
29일 외신에 따르면 대만 의회는 전날 총통의 권한을 축소하는 내용을 담은 ‘의회 개혁법’을 출석 의원 103명 중 58명의 찬성으로 가결했다.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 개선을 지지하는 제1 야당인 중국국민당과 포퓰리즘 정당으로 평가받는 제2 야당 대만민중당이 이번 법안 통과를 주도했다. 대만 입법원은 야당인 국민당과 민중당이 각각 52석과 8석으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고, 여당인 민주진보당 의석은 51석에 불과하다.
의회 개혁법은 입법부에 국방, 기업 비밀, 개인 사생활 등 기밀문서 자료 요구권을 광범위하게 부여했다. 국방비 편성을 포함한 의회의 예산통제권도 강화했다. 국민당은 ‘의회를 개혁해 국민에게 권력을 돌려주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 법률은 대만 점령을 노리는 중국에 대형 호재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만군의 무기 도입 비용 등 기밀을 공개하고, 특별 군비 지출을 항목별로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브 나흐만 대만 국립정치대 정치학과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이 법률 때문에 큰 혼란이 빚어질 것이며 대만의 지정학적 상황에도 잠재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회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정부 관료가 의원의 질의에 응답하지 않거나 질문 범위를 벗어난 발언을 하고 반문하면 의회 모독으로 간주해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공무원이나 민간인을 공청회에 소환하고, 이들이 거짓말할 때는 징역형을 선고할 수도 있다.
여당과 시민단체, 학계는 법률이 대만의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며 반발했다. 민진당은 법률 통과 과정에서 여당과의 합의가 없었다는 절차상 문제와 함께 법률 내용의 위헌 여부를 검토 중이다. 대만변호사협회는 다수 야당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전 법률안을 만들면서 실질적 논의나 검토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우루이런 대만중앙연구원 연구원은 “이것은 의회 쿠데타”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했다. 이날 입법원 인근에는 7만여 명의 시민이 “중국의 정치적 간섭을 거부하라”고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반중 인사 체포되는 홍콩홍콩에서는 경찰이 중국에 대한 증오를 선동했다는 혐의로 6명을 체포하는 등 사회 통제의 고삐를 죄고 있다. 지난 3월 개정된 홍콩 국가보안법이 적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콩 경찰은 지난 28일 성명을 통해 인권변호사 초우항텅과 다른 5명이 SNS에서 중국에 대한 증오를 선동했다고 주장했다. 다음달 4일 톈안먼 사태 35주년을 앞두고 이를 암시하는 숫자를 쓴 게시물을 올렸다는 것이다. 매년 톈안먼 시위를 기념하는 촛불 집회 조직 단체의 부회장을 맡아온 초우항텅은 2021년 9월부터 불법 집회 혐의로 교도소에 구금 중이다. 강화된 국가보안법은 외세와 함께 허위 또는 오해 소지가 있는 정보를 퍼트리는 등의 경미한 행위에도 최대 징역 10년형을 선고할 수 있다. ‘불법적 의도’와 ‘부적절한 수단’ 등 법률 문구가 모호해 외국인 여행자도 조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홍콩프리프레스(HKFP)에 따르면 홍콩 교육당국은 최근 학부모에게 통지문을 보내 “자녀의 국가 정체성 인식 강화를 위해 학교에 협조하라”고 촉구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애국주의 교육법’ 제정에 맞춰 홍콩 초등학생에게도 일반 교양과목을 통해 국가보안법과 중국 공산당, 인민해방군에 관한 내용을 교육하고 있다.
김세민/이현일 기자 unija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