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경기 둔화에 '철맥경화'…철근 재고량 12년 만에 최대

입력 2024-05-29 17:12
수정 2024-05-30 09:55


국내 철강업계가 급증한 철근 재고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내수 시장이 위축되며 재고가 12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건설 경기가 악화하면서 철근 수요가 급격히 감소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29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철근 월평균 재고량은 66만 5149t으로 2012년(약 38만 7000t)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 분기 대비 21.4% 증가했고, 1년 전보다 40% 증가한 수치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5월 1~15일 국내 8대 제강사의 철근 재고량은 약 37만t으로 추산된다. 이 추세가 계속되면 국내 제강사들의 철근 재고량 최대치가 또 한 번 경신될 것이란 관측이다.

철근 내수 판매는 감소하는 추세다. 올해 1분기 내수 시장에서 판매된 철근은 184만t으로 1년 전보다 20.4% 감소했다. 지난 3월의 경우 내수 판매는 67.9만t으로 전년 동기 대비 26.5% 감소했다. 3월 기준으로 지난 10년간 판매량이 80만t을 밑돈 적은 없었다.

국내 철근 수요가 감소하면서 제강사들은 철근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올해 1분기 철근 생산량은 203만t으로, 13년 만에 최소치를 찍었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철근 공장 가동률도 63%대로 추산하고 있다. 1년 전 90%대에서 급감했다. 철근 수요가 확대되는 성수기인 4~6월을 앞두고 생산량을 줄였다는 설명이다.

철근 시장이 악화한 원인은 건설 경기에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주택 인허가 건수는 7만 4558가구를 기록했다. 1년 전에 비해 22.8% 감소했다. 높은 금리 수준과 인건비 상승 등이 공사비를 끌어올리며 부동산 시장이 냉각했다는 분석이다. 시장에선 이 추세가 계속될 경우 올해 주택 착공 건수는 20만호에 그칠 전망이다. 작년보다 약 30% 감소한 수치다.

철강업계에선 철근 시장이 더 침체할 것이란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철근의 원재료인 고철(철 스크랩) 가격 하락 폭이 철근 하락 폭보다 적어서다. 올해 1분기 국내 철근 평균 유통가격은 약 99만원 선에 머물렀다. 이달 들어 국내산 철근 가격은 t당 70만원 선까지 29% 하락했다. 반면 고철 가격은 올해 1분기 t당 45만원대에서 이달 15일까지 40만원대로 10%가량 떨어졌다.

건설 경기가 위축되며 '철맥경화'가 나타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건축·재개발을 추진하며 부산물로 나오는 고순도 고철 공급량이 감소해서다. 제강사들은 불순물이 적은 고순도 고철을 수급하기 위한 경쟁에 주력하는 중이다. 고철 판매상들의 가격 협상력도 향상됐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고철 가격 하락세가 둔화하면서 제강 마진이 감소하고 있다"며 "조만간 고철 판매상에 맞서 가격 인하를 위한 대응책을 모색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