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사는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명시한 상법 382조3의 문구를 ‘회사와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위하여’ 또는 ‘회사와 총주주를 위하여’로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최 부총리는 “6~7월 공청회를 통해 구체적 방안을 수렴하겠다”며 도입을 기정사실화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두어 해 전부터 주장하고 4월 총선에서 공약한 ‘소액주주 우대용’ 상법 개정을 윤석열 정부가 덥석 받아들인 모양새다.
‘비례적 이익’(주주로서 갖는 1주의 가치)이니 ‘총주주’(전체 주주)니 하는 생소한 용어를 동원했지만 본질은 포퓰리즘이라는 점에서 걱정스럽다. 이사회가 지배주주 이익만을 고려하는 것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입법이라는 설명이지만 기업과 주식회사 제도에 대한 이해 부족의 발로다. ‘1주=1의결권’이라는 주주 평등의 원칙이 지켜지는 한 소액주주에게만 해가 되는 거래는 이론상 존재할 수 없다. “회사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은 동일하며 우리 판례에서도 둘을 구별하지 않고 있다”(천경훈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제각각인 주주의 견해와 이익을 집단화·동일화한 뒤 이사에게 따르도록 강제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한 임무다.
소액주주가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되며, 때로 우대가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집중투표제, 감사분리선출제, 집단소송 같은 다양한 제도가 이미 작동 중이다. 하지만 소액주주 권익이 언제나 지배·대주주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엄밀히 보자면 소액주주는 특정 시점에 주식을 보유한 제한된 이해관계자이며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은 아니다.
물적분할 등에서 소액주주가 불이익을 받는 게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중요한 요인이라는 주장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그래서 정부는 2022년 말 물적분할 시 주식매수청구권 부여, 상장심사·공시 강화 등의 개선책을 내놨다. 올 들어서도 대주주의 비상장 개인회사 보유 현황 자율공시 등으로 ‘쪼개기 상장’에 제동을 걸었다. 추가 보호 조치 강구라면 모를까 ‘기업 헌법’인 상법 개정까지 용인될 수는 없다.
실제로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규정한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영국 고등법원은 최근에도 ‘이사가 주주에게 충실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판시했다. 미국 일부 주의 회사법과 판례에 ‘회사 및 주주’라는 표현이 등장하긴 한다. 하지만 ‘회사에 이익이면 주주에게 이익’이라는 일반론적 의미일 뿐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구분하는 취지는 아니다(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
상법 개정 시도가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최근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이 그토록 강조해 온 자유시장경제와 반대로 가는 경우가 잦아서다. 대통령은 얼마 전 출범 2년차 첫 국무회의에서도 “반시장적 경제정책을 민간 주도 경제로 전환했다”고 말했지만 민망한 자화자찬이다. 건전재정 기조를 강화한 것 외에 특별히 자랑할 만한 성과를 찾기 힘들다. “반시장적 부동산정책을 정상화했다”지만 공시가격 인하 정도에 그쳤다. 뒤죽박죽 부동산 세제·시장 정상화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종합부동산세만 해도 야당에서 ‘폐기’ 주장까지 나온 마당에 여당은 ‘형평과 세수를 고려한 신중한 개정’ 타령이다. 서민 주거를 위협하는 임대차 3법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
민간 중심 경제의 핵심인 규제개혁도 지지부진하다. 대통령이 ‘규제개혁 1호’로 지목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은 21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될 처지다. 국민적 공감이 높은 상속·증여세에 대해서도 최 부총리는 ‘할증과세 폐지 검토’를 언급했을 뿐이다.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파견법과 중대재해처벌법 개정도 하세월이다.
때로 반시장적 입법에 앞장서는 모습도 적잖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추진하는 납품대금 연동제, 공정거래위원회의 국내기업 차별적 플랫폼법 제정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정부가 대못을 박아놓은 데다 거대 야당을 상대하는 버거움을 모르지 않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자유시장경제 회복이 윤 정부 출범의 이유이자 소명임을 잊어선 안 된다.